"빨간 김치, 17세기에도 먹었다"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13.04.13 03:25 | 수정 2013.04.13 05:06

    '조선시대 김치의 탄생' 쓴 박채린씨

    18세기 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다리에 힘이 없어 파김치처럼 늘어지는구려"라는 표현이 나온다.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폭풍우로 힘없이 늘어져 흔들리는 작물들의 상태를 "김치처럼 변해 흐늘흐늘"이라고 묘사했다. 언어 생활의 한 부분이 될 만큼 김치가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김치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채린(42)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 궁금증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 냈다. 저(菹)와 침채(沈菜), 김치의 관계를 추적해 '조선시대 김치의 탄생'(민속원)을 펴낸 저자는 300여권에 달하는 고려·조선시대 문집을 비롯해 한·중·일 사료를 바탕으로 김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중요한 먹을거리로 정착하게 됐는지 밝혀냈다.

    절임 채소를 뜻하는 저채는 중국 '시경'에 처음 등장하는 음식 이름이지만 젖산발효 계통인 김치와 달리 초산을 넣어 만든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문헌에 일상적인 저채를 '저(菹)'라고 지칭한 사례도 없었다. 박 연구원은 "한반도의 저채 문화는 한자어 '저'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침채라는 말이 김치의 어원일 수 있다는 기존 가설도 재고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김치 표기어로 침채가 사용된 비중은 12%에 그쳤다는 것이다. "침채는 딤채라는 고유어의 음가를 살리려는 목적 또는 김장생의 '가례집람(家禮輯覽)' 등에서 제찬(祭粲·제사 음식)을 뜻하는 용도로 표기할 때 차용한 한자어일 가능성이 큽니다."

    박채린 연구원은“실제 가정에서 김치가 어떻게 변형돼 왔는지도 추적하고 싶다”고 했다. /광주=김영근 기자
    조선 땅에 유입된 고추가 김치 재료로 쓰인 것과 관련, '증보산림경제'(1766)보다 70~80년 앞선 기록을 발견한 것도 값진 성과다. 박 연구원은 "개인이 평생 쓴 글을 후손이 모아 낸 문집 '송파집'(1633~1709)에서 그 기록을 찾아냈고, 이는 고추장 원료로 사용된 시점과 큰 격차가 없었다"면서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고추는 남미에서 들어온 뒤 토착 품종이 생겼고 대량 번식에 성공하면서 우리 음식 문화에 정착된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식품영양학이라는 전공에 문화사 연구를 접목했다. 정부 출연 기관에서 김치 세계화를 모색 중인 박 연구원은 "김치 세계화란 세계인이 모두 김치를 먹는 게 아니라 한민족의 기술력·문화·예술성이 김치로 대표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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