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大選) 평가위원회가 9일 364쪽짜리 대선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당 밖 인사 5명, 당내 인사 4명으로 짜인 평가위는 1월 21일부터 80여일 동안 선대위 핵심 20여명 인터뷰, 국회의원·당직자 690여명 설문, 13차례의 전국 순회 간담회, 국민 1000여명 여론조사 등을 실시해 이 자료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먼저 "18대 대선은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선거였는데도 민주당이 잘못해서 졌다는 '내부 책임론'이 절대다수"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잘못한 것'으로는 "당 지도부가 제도 정치와 사회운동의 본질적 차이를 혼동해 정책의 일관성을 버렸다"며 한·미(韓美) FTA 반대 시위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발언' 논란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민주당의) 안보 대처 방식에 불안감을 갖는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후보 단일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맹신(盲信)"의 문제점도 거론하고 "일찍이 민주당이 계파 문제 때문에 이렇게 위기상황에 처한 적은 없을 정도로 계파 패권주의가 도(度)를 넘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으려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소통과 통합의 길을 추구하고, 안보 문제에 대한 입체적 접근과 구(舊)시대적 계파 정치 청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민주당이 유리한 선거에서 왜 졌는지, 선거 후 새 정부가 잇따라 실책을 하고 있는데도 왜 민주당 지지율이 여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지를 상당 부분 설명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이 끝난 뒤에도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우리가 못해서 졌다"며 이번 것과 비슷한 내용의 내부 평가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친노(親盧) 지도부가 보고서에 '대외비' 도장을 찍어 서랍에 넣고 잠가버리는 바람에 대선에서 약(藥)으로 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민주당 내엔 이런 세력과 체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반성문도 민주당이 크게 달라지는 변화의 계기가 되기보다 그저 '반성의 기록'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이번과 같은 반성문을 다시 쓰는 '습관적 반성 정당'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