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레이건과 정치적 동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지원

입력 2013.04.09 03:03

[대처와 그녀의 파트너들]
고르바초프와 얘기 나눈 뒤 "그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

마거릿 대처의 영국 총리 재임 기간(1979~1990)은 냉전이 끝나가는 막바지와 겹친다. 이 기간 그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독일의 헬무트 콜 등과 함께 세계사의 톱니바퀴를 굴렸다.

대처는 영국을 이끌면서 그 어느 때보다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대처와 레이건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공유했을 뿐 아니라, 공산 진영과 대결하는 데서도 서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1984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만난 마거릿 대처(오른쪽) 당시 영국 총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前소련 대통령. /AP 뉴시스
대처는 1983년에 미국의 순항미사일을 유럽에서는 최초로 배치했고, 1985년에는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지지했다. 또 1986년에는 리비아 공격을 위해 미군 폭격기의 영국 공군기지 사용을 허가했다. 레이건도 이에 화답해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을 적극 옹호하며 아르헨티나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대처-레이건의 밀착 관계로 중남미에서는 '대처가 레이건의 정부(情婦)'라는 소문이 났고, 리비아 카다피는 "대처-레이건에게 피의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대처는 야당 시절부터 "소련이 세계 정복을 노리고 있다"며 공산주의에 대한 칼날을 세웠다. 그에게 '철(鐵)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도 소련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련 고르바초프와 관계를 튼 첫 서방 정치인이기도 했다. 1984년 대처는 당시 격렬한 권력투쟁 와중에 있던 고르바초프를 런던으로 초청했다.

대처는 소련을 다루는 데 고르바초프가 적절한 상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위신을 높여줌으로써 그의 집권에 일조했다. 대처는 고르바초프와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후 "그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말로 호의를 표시했다. 그 후 대처는 고르바초프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지원했다. 이런 대처의 지원은 고르바초프가 소련 변화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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