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화제'를 몰고 온 '부인'들이 있다. 1993년엔 클린턴 부인 힐러리가, 2009년엔 오바마 부인 미셸이 그랬다. 2013년엔 단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다.
지난달 말 시진핑의 러시아·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펑리위안을 향해 중국인들이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의 등장"이라며 환호하고 있다. 한 손에 핸드백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걷는 펑리위안은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해 온 이전 중국 최고 지도자의 부인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펑리위안이 중국의 세련된 퍼스트레이디 시대를 연 첫 주인공은 아니다. 정확히 50년 전인 1963년 류사오치(劉少奇) 당시 국가주석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는 하이힐과 진주 목걸이, 몸에 붙는 원피스 차림으로 남편의 동남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며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지금 중국인들은 펑리위안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50년 전 왕광메이에게는 "부르주아 반동"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문화대혁명 발발 이듬해인 1967년 4월, 홍위병들은 주석 관저에서 왕광메이를 끌어낸 뒤 그녀의 집에서 찾아낸 하이힐을 강제로 신기고 탁구공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게 한 뒤 10시간 넘도록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망신을 줬다. 그 후 반세기 동안 중국에서 서구적이고 세련된 퍼스트레이디는 사라졌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직에 오를 때만 해도 중국에선 펑리위안이 이전 지도자 부인들처럼 숨어 지낼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중국은 이번 해외 순방을 통해 그런 예상을 깨버렸다. '멋쟁이 퍼스트레이디'의 효과는 컸다. 중국은 낙후하고 촌티 나는 나라라는 인상을 갖고 있던 세계는 펑리위안에게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펑리위안은 중국이 1963년 1인당 GDP 70달러 수준의 극빈 국가가 아니라 경제 규모 세계 2위 대국이며, 경제·군사 분야를 넘어 문화 소프트파워에서도 세계 일류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아이콘이 됐다.
펑리위안의 외국 나들이가 자국 산업 발전에 끼친 효과도 컸다. 그녀의 옷과 가방을 제작한 광둥성의 익셉션(EXCEPTION)은 '펑리위안 바람'의 1차 수혜주가 됐다.
중국은 퍼스트레이디를 화려하게 꾸며 자국 이미지 제고와 패션·디자인 산업 홍보에 총체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는 국가 지도자의 옷과 가방에 대해 50년 전 중국인이 왕광메이에게 한 것과 같은 고가 사치품 논쟁이나 벌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들었던 가방에 대해 고가 명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박 당선인 측은 "국내 한 영세 업체가 작은 가게에서 만든 저렴한 제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이번엔 '짝퉁' 논란이 불거졌다. '짝퉁 드는 대통령'은 인정해도 '100만원 가방 대통령'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주장도 있었다. 우리나라 1인당 GDP가 중국의 4배 수준인 걸 고려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대통령의 검소함이 비판받을 이유는 없지만, 그가 외국에 나갈 때만은 좀 더 화려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당장 5월 미국 방문 때부터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잘 만든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서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방한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국 여자들 옷 잘 입는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런 옷을 만드는 나라 대통령이 초라해 보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차라리 과시하는 편이 더 낫고 국익에도 부합한다. 세계 무대에 선 멋진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하며 손뼉 칠 국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