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사냐, 재단사냐?" 소리 들어도… 디자인에 미쳐 일했다

    입력 : 2013.04.05 03:04

    [원로 봉상균·조영제,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첫 헌정 展]

    그래픽 디자이너·판화가 봉상균 - 유화·그래픽 작품 30여점 전시
    "전부 손으로 직접 그리던 시절… 多作은 못했지만 고유함 얻어, 기계 너무 의존하지 않았으면"

    1세대 시각디자이너 조영제 - CI·공공 포스터 200여점 전시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는 최초로 컴퓨터 사용했던 작품… 이젠 나만을 위한 작업 하고파"

    지난해 여름, 산수(傘壽·80세)의 원로 디자이너 3명이 나란히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명예의 전당'은 업계에 공로가 큰 디자이너에게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선사하는 명예 제도다. 첫 헌정(獻呈)의 '영광'을 안은 이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판화가인 봉상균(81) 한국디자인트렌드협회장, 1세대 산업디자이너인 한도룡(80) 홍익대 명예교수, 1세대 시각디자이너이자 CI(기업이미지) 개척자 조영제(78) 서울대 명예교수. 봉 회장은 영화감독 봉준호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들의 '손'은 핸드프린팅돼 디자인진흥원에 보존됐다.

    이들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가 오늘(5일)부터 13일까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디자인진흥원 지하 1층 갤러리에서 열린다. '명예의 전당 초대 헌정 기념 전시―봉상균·조영제전(展)'이다. 봉 회장과 조 교수가 지난 50여년간 작업한 디자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3일 만난 두 사람은 슬쩍 농(弄)을 던졌다. "우리 나이가 80인데 솔직히 너무 늦게 상을 준 거 아닙니까?"

    8순 거장들의 손으로 그린 디자인들

    봉 회장과 조 교수가 전시하는 작품은 각각 30여점, 200여점이다. 봉 회장은 유화를 비롯한 그래픽 작품을, 기업·정부 프로젝트를 주로 맡았던 조 교수는 50여점의 CI 작품과 100여점의 공공 포스터를 내놓았다. 조 교수가 "너무 작품이 많아서 뭘 선택할지가 일이었다"고 하자, 봉 회장이 되받아쳤다. "난 좋은 작품은 다 팔아먹어서 지금 내놓을 게 없어."

    봉상균(작은 사진)의 ‘규수방’.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한 디자인 작품이다.

    전시작은 자세히 뜯어보아야 한다. 거의 전부 연필 혹은 물감으로 꼼꼼하게 칠한 것들이다. '시각 디자인=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알고있는 세대 눈에는 놀랍게 비친다. "우리 때는 전부 손으로 직접 그리고 칠했다. 몸으로 익히면서 오리지널리티(고유함)를 얻던 시절이었다."(조영제) "그래서 요즘 친구들 같은 다작(多作)을 못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에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 컴퓨터로 살 붙이고 지우는 건 그저 '기계적인 기술자' 아닌가…."(봉상균)

    ◇'디자이너=도안사' 시절, 미친 듯 일했다

    먹고살기도 빠듯하던 시절, 디자인계는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조 교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디자인한다'고 하면 '재단사냐' '도안사냐'고 물었다"며 "한때는 그런 시선에 화가 나 일부러 한 갤러리에서 CI 작품만 모아 전시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 때문에 반(半) 미친 듯이, 반드시 이 분야를 자랑스럽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다"고 했다.

    조영제(작은 사진)의 ‘자화상’. 신호등 안에 자신의 화난 모습·놀란 모습·웃는 모습을 직접 손으로 그려 넣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진 두 사람의 작품 중엔 서울 동부이촌동역 벽면 그래픽(봉상균), 1988 서울올림픽 공식 포스터(조영제) 등이 있다. 특히 조 교수가 제작한 서울올림픽 포스터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첫 번째 올림픽 포스터였다. 그는 "손으로 그린 도안 수십장을 캐비닛만큼 커다란 컴퓨터에 디지털신호로 입력해야 했고, 그마저도 한국에는 기술이 없어 일본에서 밤샘 작업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인터뷰 내내 조 교수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봉 회장이 그에 동조했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의견이 갈렸다. 조 교수는 "이제 클라이언트(고객)가 없는, 나만의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고, 봉 회장은 "그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젠 아무것도 안 하고 편히 지내기만 할 거예요."(봉상균) "하지만 (디자인) 하지 말래도 또 할 거잖아요? 아니에요?"(조영제) "허허, 이 사람이…."(봉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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