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킨 백'의 그녀, 탈북자 사랑에 눈뜨다

조선일보
입력 2013.03.30 03:03 | 수정 2013.03.31 14:15

쾌락 상징서 사회운동가 변신 버킨

콘서트 수익금 기부
北수용소 탈출 탈북자 수기… '14호수용소~'읽고 충격
"인간에 대한 애정 있다면… 北인권 개선에 노력해야"

佛 문화의 아이콘
가수로 배우로 모델로… 性혁명·히피문화 이끌어
최근까지 에이즈 퇴치 힘써… 미얀마 민주화 운동 앞장도

1000만원 넘는 '버킨 백'
가방 판매 수익금 나오면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
"수지여사 사진 붙인 내 가방… 경매로 팔아 다 기부했죠"

제인 버킨은 “사랑이 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라며 너무 늦기 전에 가족이든, 연인이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꼭 말하라고 강조했다. 작은 사진은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단란한 모습. / 아이디어랩 제공 corbis
제인 버킨은 “사랑이 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라며 너무 늦기 전에 가족이든, 연인이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꼭 말하라고 강조했다. 작은 사진은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단란한 모습. / 아이디어랩 제공 corbis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영국 출신이면서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꼽히는 제인 버킨(Birkin·67).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은 그녀를 그녀의 이름을 딴 고가의 가방(에르메스 버킨 백)으로 기억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가수이자 배우, 모델로 무대를 누빈 버킨은 1960~70년대 쾌락주의(hedonism)의 상징이자 개방적인 성(性) 혁명과 히피 문화를 이끌어간 주인공이었다.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그녀는 사람들 입에 수시로 오르내렸다. 영화에서 체모(體毛)를 드러낸 첫 여배우(1966년·영화 '블로우 업')로 세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68년 연인이자 프랑스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세르주 갱스부르와 부른 'Je t'aime… moi non plus(사랑해요)'에선 야릇한 교성(嬌聲)을 내뱉어 '음란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현재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해 또 다른 의미의 자유와 해방을 외치고 있다. 사랑했던 연인 세르주 갱스부르가 1991년 세상을 떠난 뒤 모든 애정을 에이즈 퇴치, 인권 향상을 위해 쏟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고, 불법 체류자와 난민을 돕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그 공으로 지난 2001년 대영제국훈장(OBE)을 받았고, 프랑스 국가 공로 훈장(Ordre National du Méite)도 받았다.

이제 그녀의 시선은 탈북자 돕기에 맞춰져 있다. 30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그녀는 전화 인터뷰에서 "기회가 되면 탈북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탈북자는 언제부터 관심 있었나.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과 미얀마 민주화를 돕기 위해 20년을 노력했다. 수지 여사에게 헌정하는 앨범을 2008년 냈고, 수지 여사 석방을 위해 여러 차례 시위했다. 또 그 뒤 몇 차례 열린 콘서트 수익금을 앰네스티 등에 기부했다. 그러다 탈북자들 문제에 대해 듣게 됐고, 사람이라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자라면 북한 인권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북자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지난해 북한 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신동혁) 이야기를 담은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을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충격이었다. 세상에 그런 곳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 그렇게 탄압받고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TV로, 글로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그치고 싶진 않았다. 행동하지 않는 의지는 아무런 용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에 당장 가고 싶었지만 북한은 개방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과 가장 가까운 한국에 가서 북한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싶다."

―쾌락과 향락주의의 상징이었다. 갑자기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인가.

"글쎄…. 출발은 다 비슷하다. 사람과 사랑이다. 내가 원래 애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지독하다. 미친 듯이 사랑한다. 과거 한 남자에게 애정을 쏟았다면 이제 그 대상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을 만나면 힘이 생긴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장면을 TV에서 보고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일본행 비행기표를 샀다.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공포와 두려움, 좌절이 곳곳에 가득했다. 하지만 점차 극복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한 정신적 성숙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만든다."

―아이티 지진 때는 이동식 천막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을 돌봤다고 들었다. 그런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버리니 더 채워진다고 하면 이해하겠는가. 사실 예전에도 맨발로 거리를 자주 누볐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엔 내 곁에 매력적인 남성과 고급 차, 수많은 파파라치가 항상 같이 있었고, 현재는 팔레스타인, 보스니아, 르완다, 아이티 같은 지역을 다니며 맨발로 또는 나막신을 신고 거리에서 지역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남에 대한 작은 배려가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고 생각한다. 아웅산 수지 여사 같은 인물이 좀 더 나은 현재를,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간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사람과 교감하는 것이다. 나는 상대에게 계속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내가 받은 게 더 많다고 느낀다. 이 때문에 예기치 않은 만남을 사랑한다. 홍상수 감독 작품('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카메오로 출연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 2011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이베이 경매에 내놓은 제인 버킨의 에르메스 버킨 가방. 10만 100파운드(1억 6800만원 정도)에 팔렸다.
지난 2011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이베이 경매에 내놓은 제인 버킨의 에르메스 버킨 가방. 10만 100파운드(1억 6800만원 정도)에 팔렸다.
―버킨 백은 당신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1000만원도 넘는 가방을 사려고 2년도 넘게 기다린다. 기분이 어떤가.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가방이 탄생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선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그 외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들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싫다. 내 버킨 백엔 아웅산 수지 여사 얼굴을 붙여놨었다. 10년 넘게 들고 다녔던 것 같은데 몇 년 전에 경매에 내놓았고, 금액을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버킨 백 3개를 모두 경매에 내놔 기부했다."

―버킨이란 이름을 빌려준 대가가 있었나.

"돈을 받진 않는다. 판매에 대한 일정 수익금이 나오는데 버킨이란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단체와 연결돼 있다."

―스타일 아이콘으로 산다는 기분은 어떤가.

"나는 단 한 번도 스타일 아이콘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남들과 똑같은 게 싫을 뿐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 해봐라. 뭐 어떤가. 누가 막는가. 잠옷 위에 레인코트를 입어보는 건 어떤가. 이상한가? 유명 배우 줄리 앤드루스도 그 차림을 하고 거리를 누볐다. 스타일이 멋지다, 아니다 하는 것을 누가 정하는가. 세상에 그런 규정은 없다. 얽매이지 말라. 난 특이하고 도전적인 걸 좋아한다. 내 패션도, 내 인생도 그렇다. 유머, 괴짜다움, 사랑. 이것이 나를 설명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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