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리스트도, 뮤지컬 스타도 '논문 베끼기'

    입력 : 2013.03.28 03:10 | 수정 : 2013.03.28 09:50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 [4] 예체능계 논문표절 만연
    2008년엔 미술계 인사 42명, 논문 45편 무더기 표절 의혹
    "올림픽에서 ○○○선수가…" 국책기관 단행본 베끼면서 본인 이야기까지 옮기기도
    예체능 교육 땐 이론 소홀, 정작 은퇴 후엔 학위 중요시… 논문 표절 유혹에 쉽게 빠져

    예술·체육계의 논문 표절은 특히 고질적이다. 예·체능계 인사들은 "교수까지 표절 때문에 무더기로 문제가 되는 마당에, 예·체능계에선 표절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체능계 인사는 "낚시에 비유하자면 체육대 학위 논문 중 표절 논문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했고, 한 서울대 교수는 "예·체능은 표절계의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2008년 전국 12개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미술계 인사 42명의 논문 45편에 대해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예술과 시민사회'는 서울교육대 미술교육과 박모 교수와 한남대 회화과 신모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 석사학위 논문을 각각 15편과 17편 표절했다고 밝혔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박 교수는 논문을 표절하면서 '유기체적 조각'을 '유기 이미지 회화'로, '디자이너'를 '예술가'로 바꾸는 등 단어만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만들었다. 신 교수는 다른 사람의 논문에서 오타가 있는 주석까지 그대로 갖다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교수 모두 표절 논란 이전부터 재직했던 대학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서울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최근엔 연구 윤리나 검증 등이 강화됐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면서 "표절 시비에 따른 학위 취소 때문에 교수 임용을 다시 심사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남대 측은 "교수에게 각별히 주의를 당부했다"면서 "일반적으로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논문 표절이라든가 이런 시비가 나오면 온정적으로 처리하는 전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유명 뮤지컬 배우 신모씨는 2005년 낸 공연예술학 석사학위 논문에서 국내 연구자의 학위 논문을 2편 이상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연속된 문단을 최대 10개 통째로 갖다 붙였으며, 이 과정에서 각주(脚註)까지 똑같이 베꼈다. 그는 이 학위를 바탕으로 5개 대학에서 강사·겸임교수로 일했고, 현재도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신씨는 "너무 오래돼서 내가 표절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내 노하우와 스킬을 전수하기 위해 겸임교수를 한 것이지 논문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여러 개 딴 C씨는 연세대에 낸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C씨는 참고 문헌에 적어놓은 논문 중 일부를 각주와 인용 없이 통째로 베끼거나 말 바꾸기를 하는 수법으로 논문 10여 쪽을 채웠다. C씨는 본지와 통화하면서 "표절이 지적된 부분은 실수지만 논문 주제는 내가 선정했다"고 했다. 그는 체육계 출신의 모 국회의원 논문 표절 사태가 터졌을 때 "(그가) 논문 표절이라는 화두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나. 그 부분이 좀 더 안타깝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J씨는 석사학위 논문 중 10여 쪽을 국책 기관의 단행본 내용으로 채웠다. 본지 확인 결과 J씨는 해당 내용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갖다 붙였다. 참고 문헌에도 이 단행본은 언급되지 않았다. J씨는 인용 과정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20××년 올림픽에서 ○○○(본인 이름) 선수가…(생략)" 하는 식으로 본인 이야기가 들어간 부분까지 그대로 베꼈다. J씨는 "표절에 대한 규정을 잘 몰랐던 제 불찰"이라고 했다.

    한 문화예술 기관 관계자는 "예·체능은 이론화 작업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 교육을 제대로 안 하는데도 정작 선수 생활을 끝낸 이후의 삶에선 학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 때문에 논문 표절은 예·체능계 인사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유혹"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는 "평생교육 시대인 만큼 석사과정에 진학하겠다는 교육적 열정은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이론적 성과 평가가 필요한 분야에서만 논문을 통해 학위를 따도록 하고, 경력이나 실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에서는 자격시험 등을 통해 학위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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