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내가 너무 늙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반감이 들었다. 이런 소설을 과연 읽어야 하는 것일까?" "밑바닥 이하 인생의 삶과 그 무의식을 이렇게 꼼꼼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한국문학에 또 있는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동성애자 성재를 주인공으로 하류 그 이하 인생들의 절망을 그려낸 젊은 작가 김혜나(31)의 장편 '정크'(민음사)를 두고는 이런 말이 오갔다. 김혜나, 중견 작가 조갑상(54)의 장편 '밤의 눈'(산지니)과 정지아(48)의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가 2013년도 동인문학상 3월 독회를 통과했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 김주영 김화영 오정희 이문열 정과리 신경숙)는 최근 제4차 심사독회를 갖고 이 세 작품을 오는 10월 열리는 동인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이로써 최종심 후보에 오른 작품은 이동하 소설집 '매운 눈꽃'과 이승우 장편 '지상의 노래', 백가흠 장편 '나프탈렌', 정한아 장편 '리틀 시카고', 박성원 소설집 '하루', 문형렬 장편 '어느 이등병의 편지', 강석경 장편 '신성한 봄'을 포함해 모두 10편이 됐다.
김혜나의 '정크'는'쓰레기(junk)'라는 제목 그대로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품. 주인공 성재는 사생아로 태어난 비정규직 게이로, 작품 속에서 그는 폐기처분해야 할 쓰레기로 취급된다. 루저 그 이하의 삶이다. 랏슈(휘발성 환각약), 떨(마리화나의 은어), 물뽕 등 각종 향정신성의약품과 그 음용에 대한 서술, 또 게이들의 섹스에 대한 묘사가 극사실주의로 전달된다. 소재주의 혐의와 일부 대목의 엉성한 묘사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작품 이면에 숨은 작가의 치열함에 더 점수를 주기로 했다. 특히 "성재의 자살 시도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되풀어 읽어도 좋았다"는 평이 이어졌다.
부산 경성대 국문과 교수인 작가 조갑상의 장편 '밤의 눈'(산지니)은 6·25전쟁 당시 가상의 공간 대진읍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 심사위원들은 박진감 있는 묘사와 취재에 바탕을 둔 리얼리티를 칭찬하면서도, '증언으로서의 문학'이 가진 근원적 한계를 지적했다. '르포'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심사위원은 "문학은 현실의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신화이어야 한다"는 알베르 카뮈를 인용했다. 하지만 6·25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드물다는 점, 그리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비수도권 지역의 작가가 맹렬한 작가정신으로 이뤄낸 성취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정지아의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는 비루하고 누추한 인생들이 소박하게 고백하는 인생 이야기이자 연민과 공감의 소설. 11편의 단편을 모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3인의 대화' 형식에 주목했다. 아름다운 덩굴처럼 얽힌 아라비아 특유의 무늬처럼, '대화의 아라베스크'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행복' '봄빛' 등 작가의 전작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심사위원들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편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는 작가 특유의 매력에, 심사위원들은 이달 후보로 올리는 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