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계산된 '구멍'

    입력 : 2013.03.27 03:12

    [이유있는 디자인] ① 공간을 비운 건물
    중간층 비우거나 1층 개방…
    '용적률' 지키려 시도했는데 역동적 디자인 효과까지 얻어
    "파격만 좇으면 역효과 될수도"

    건물 가운데를 비워놓고 지붕으로 두 동(棟)을 연결한 사옥(社屋), 바지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처럼 건물 상부를 두 개로 갈라놓은 서울 중앙우체국, 금싸라기 건물 1층을 아예 터널처럼 뚫어놓은 서울 을지로입구 '오퍼스11'….

    건물 일부를 텅 비도록 뚫어놓아 유명해진 건물들이다. 이 건물들은 왜 일부를 비웠을까. 알고 보면 이들 디자인은 각종 건축 법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가장 흔한 경우가 조망권 때문에 건물을 비우는 것이다. 이 경우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 규정에 따라 비워낸 면적만큼 건물을 더 위로 올릴 수 있어 손해를 안 보고, 이웃을 위한 '배려의 디자인'도 할 수 있다고 한다. 2010년 지어진 경기도 화성 폴라리온스퀘어 사옥, 서울 동부이촌동 동부센트레빌 등이 이런 예다. 동부센트레빌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한만원씨는 "당시 한강변 아파트들이 강을 가린다는 비판이 많았다"며 "고심 끝에 건물 중간을 비우고 대신 층수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바지를 거꾸로 세운 듯한 디자인의 서울 중앙우체국 청사. /이태경 기자
    서울 을지로의 '오퍼스11' 빌딩 역시 가장 수익성이 좋은 건물 1층을 터널처럼 비웠다. 덕택에 이 건물 1층은 지하철역과 명동 일대를 잇는 보행자 통로로 쓰이는 '착한 공간'이 됐고, 10층엔 시민을 위한 하늘정원도 뒀다. 잃어버린 용적률은 건물 한 층의 면적을 조금씩 전부 넓히는 방법으로 채웠다고 한다.

    건물 폭 제한도 디자인에 활용된다. 11~21층까지 건물 상부가 벌어지면서 비어 있는 서울 중앙우체국은 건물 폭을 제한한 건축규정을 이용한 디자인이다. 설계사인 공간건축 이상림 대표는 "4대문 안에 10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건물 폭이 50m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건물을 두 개로 나누고 각 매스(덩어리) 폭이 도합 50m를 넘지 않도록 했다"며 "덕분에 11층엔 작은 옥상정원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경기도 화성시 ‘폴라리온 스퀘어’ 사옥. /삼정환경건축사사무소 제공
    때로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위해 건축가가 일부러 공간을 비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99년 준공된 서울 종로의 종로타워. 우루과이 출신 미국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는 건물 꼭대기 부분을 들어 올려 공중에 창문처럼 빈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비뇰리의 파트너였던 삼우건축 이원 상무는 "실내공간을 더 채울 수도 있었지만 당시 신경영에 나섰던 건축주 삼성그룹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상징할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 김창길 삼정건축 소장은 "건물 가운데를 뚫는 디자인은 법을 지키면서도 디자인을 독특하게 할 수 있고 동시에 공공성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볼륨 있고 파격적인 외관만을 위해 설계할 경우 주변과 부조화를 이룰 수도 있고, 건축비 자체도 상승하기 때문에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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