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음질·본드칠 직접 하며 몸으로 디자인 '답' 얻었다

    입력 : 2013.03.25 03:02

    [대기업부터 연예인까지 찾는 가방 디자이너 황민철]
    마음에 드는 서류가방 없어 '차라리 내가 만들자' 시작
    동두천 등 공장 돌며 기술 배워 남자 구두 본뜬 가방 디자인
    대기업도 "같이 일하자" 러브콜

    황민철(31)은 "마음에 드는 서류가방만 제때 발견했더라도,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가방 회사 '토마스 브라운(Thomas Brown)'의 대표이자 디자이너다. 친구 최하림(31), 후배 조정호(29)와 함께 디자인부터 제작, 유통까지 직접 한다. 그래서일까. 이 회사 제품, 남다르다. 작은 회사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최고급 마감 기법을 쓰고, 한 땀 한 땀 박음질에선 숨은 내공이 엿보인다. 최근 한 달 매출이 3000여 만원. 몇몇 대기업은 '같이 일하자'고 러브콜을 보낸다.

    이들은 "한 번도 디자인을 공부한 적도, 외국 서적을 참고한 적도 없다. 공장을 돌며 맨땅에서 제조기법을 배웠고, 우리만의 아이디어를 디자인에 입혔을 뿐"이라고 했다.

    사직서 내고 공장으로

    황민철은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2009년 말 한 대기업 복합화력발전소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했다. 넉 달쯤 지났을 때 불만이 생겼다. 업무가 아니라 서류가방이 문제였다. 양복에 어울리는 멋진 가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십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다 시커멓고 투박한 가방뿐. '그냥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한 가방 공장에 무작정 취직했다. 가죽 손질하고, 본드 칠하고, 미싱 돌리는 걸 배웠다. 그리고 2011년 여름, 보름쯤 밤샘한 끝에 첫 번째 가방을 완성, 사진을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올렸다. "주문 댓글이 폭주했어요. 하루 만에 40명 정도가 주문했죠. 두 번째엔 400여명이 주문했고요. 얼떨떨했죠."

    2011년 늦여름, 공장에서 알게 된 후배 조씨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세 평짜리 사글셋방을 얻어 작업실을 차렸다. 4개월 뒤엔 친구 최씨도 합류,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반지하 사무실을 얻고 '토마스 브라운'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자신의 세례명 '토마스'와 남자 가방의 대표적인 색깔 '갈색(brown)'을 합성한 상표명이었다.

    구두에서 영감을 얻다

    '토마스 브라운'의 대표 상품은 '슈즈 백' 시리즈다. 구두를 닮은 가방이라는 뜻이다. 2010년 황씨는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태슬 로퍼(술 장식이 달린 끈 없는 구두) 한 켤레를 발견했다. 오래됐지만 근사한 이 신발을 닦으며 생각했다. '구두를 닮은 서류 가방을 만들까.'

    그래서 나온 것이 '유팁 백'과 '윙팁 백', '태슬 백'이다. 발등 부분에 U자형 절개와 박음질이 들어간 구두(유팁·U-tip), 날개 모양의 절개선이 들어간 구두(윙팁·Wing-tip), 술 장식이 달린 구두(태슬 로퍼)를 본뜬 것. 가죽을 절개하지 않고 구두를 만드는 방식(홀 컷·Whole cut)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끈하게 만든 '홀컷 백'도 있다. 황씨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디자인이라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말 그대로‘젊은’회사,‘ 토마스 브라운’의 대표 황민철(가운데)과 후배 조정호(왼쪽), 친구 최하림(오른쪽). 이들이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사무실에 모여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있다. 황씨가 들고 있는 가방이‘유팁 백’, 책상에 놓인 가방이‘태슬 백’이다. /허영한 기자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맨땅에서 시작

    황씨는 "친구들과 면목동 공장을 돌며 몇 명 남지 않은 50~60대 가방 장인(匠人)분들을 붙들고 마감과 바느질을 배웠고, 동두천 가죽 공장을 헤매며 가죽 생산 공정을 익혔다"고 했다. "디자인만 공부하면 머릿속 가방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제작과 디자인까지 전부 직접 하니, 남다른 제품을 뽑아낼 수 있죠."

    많은 가방 회사가 철저한 분업(分業)으로 디자인과 제작을 하는 것과 달리,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꿰뚫고 있는 덕에 "보다 견고하고 단단한 제품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강점"이라고 했다. 황씨는 "많은 외국 유명제품 회사들도 알고 보면 우리처럼 작지만 탄탄한 제조 회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유명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배우 유아인도 이들 가방의 팬. 탄탄한 실력이 소문나면서 '구호' '르베이지' '러브캣' 같은 대기업 가방 브랜드가 제작을 맡기기도 했다. 최근엔 같이 브랜드를 만들자는 대기업도 나왔다.

    황씨는 "조만간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을 넣은 가방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왜 영국이나 미국의 오랜 문양은 가방에 넣으면서, 우리나라의 인동당초무늬나 구름당초무늬를 새긴 가방은 없을까요. 젊고 세련된 우리만의 감성으로, 꼭 구현해볼 겁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