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빼먹고 논문 代筆… 고위공무원의 참 쉬운 '博士 따기'

    입력 : 2013.03.22 03:00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 [2] 공무원이 더 심하다

    고위직 A씨의 경우 - 대학 연구물 그대로 베껴 학위
    "내용 중 괜찮다 싶은 것, 논문에 넣었을 뿐인데…"

    느슨한 한국, 엄격한 선진국 - 한국은 표절 드러나도
    망신은 잠깐, 곧 현업 복귀… 선진국은 직위·학위 모두 박탈

    '스타 강사' 김미경(48)씨의 석사 학위 논문 표절에 이어 중앙 부처 공무원이 표절 논문을 통해 박사 학위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의 사립 M대학은 20일 "정부 K기관 과장 A씨가 우리 대학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베껴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서 "해당 대학에 A씨에 대한 연구 윤리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월 '국제표준에 기반한 기록 관리 시스템 적합성 평가 지표에 대한 실증적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 학위 논문을 서울 동작구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 제출, 학위를 받았다. A씨는 이 과정에서 M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은 물론 표·그래프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베껴 썼다. 대학 측은 "A씨의 표절 대상이 된 연구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K기관에 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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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A씨는 본지와 통화해 "우리 기관에서 연구 용역 사업을 냈고 M대가 연구한 것"이라면서 "연구가 끝나 권한이 우리 쪽으로 돌아와 연구 결과 중 괜찮은 것을 논문에 넣었다"고 말했다. '표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한 대학교수는 "이런 것이 표절인 줄도 모르고, 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한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은 "학위를 따려는 공무원 중 상당수가 수업은 대충 듣고 논문은 대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격무를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고 학위를 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일반 대학원에 등록한 뒤 근무시간에 나가 출석 체크만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봤다"면서 "등록만 하면 대신 논문 써주는 아르바이트도 있고 알아서 다 해결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야간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지방직 공무원은 "대학원에 다니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논문 대필 가격 정보나 대필자 정보를 은밀히 공유한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논문 표절·대필 관행은 표절에 관대한 우리 사회 분위기와 직결돼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표절 사실이 드러나도 '잠깐 망신'만 당하고 넘어가면 사회활동이나 경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학계와 이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표절 파문을 일으켰던 공직자들이 제약 없이 활동하고 있다. 2006년 김병준 당시 교육부총리는 국민대 교수 시절인 1987년 제자의 박사 학위 논문을 표절해 학회지에 발표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8월 부총리 취임 13일 만에 낙마(落馬)했다. 그러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다 국민대 교수로 복귀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논문 표절 사실이 밝혀진 뒤 사과만 했을 뿐 청와대 입성에 지장이 없었다.

    반면 선진국에선 논문 표절이 '범죄'로 규정된다. 사실이 드러나면 사회·학계에서 이중 처벌을 받는다. 2011년 3월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당시 독일 국방장관은 박사 학위 논문 표절이 드러나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정확한 출처 없이 논문 일부를 베꼈다가 박사 학위도 박탈당했다.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도 지난해 4월 1992년에 쓴 박사 학위 논문의 표절 사실이 밝혀지자 사퇴했고 학위도 취소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는 "단기간에 학위를 따려는 공무원과 공직자들은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규범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서 "이런 행동을 눈감아주는 우리 교수들도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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