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

꿈 열풍이 불고 있다.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 강연장을 찾는다. 하지만 강연이 좋았을수록 그 후유증이 커지기도 한다. 현실로 돌아오면 꿈이 너무 멀어져서 더 짜증이 나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꿈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도 생긴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충동 구매해서 잔뜩 쌓아놓듯, 실천하지도 않을 꿈만 여기저기 쫓아다닌다. 진료실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괴롭다면서 필자를 찾았던 삼십대 초반의 직장인 김 모씨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집안의 도움에 기대어 고시를 준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몇 번 실패한 뒤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원하는 대기업으로 갈 수 없었다.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중소기업에 입사를 했는데,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직장에 불만이 많지만 다른 길을 가자니 수입이 줄어들 것 같아서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2년 만에 직장을 그만둔 그는 전문직을 갖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이만 먹고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고 늘 기분이 우울했다. 처음에는 꿈 강연을 듣고 힘이 났지만, 이제는 꿈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의욕도 나지 않았다. 소위 파랑새 증후군 즉 '꿈 우울증'에 빠진 셈이다. 변변한 꿈도 갖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럽고 심할 경우 죽고 싶다는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파랑새 증후군은 동화 《파랑새 L'Oiseau Bleu》의 주인공처럼 막연하게 행복만을 몽상하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정열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다. 유례없는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취업한 20대 직장인들의 상당수는 취업 후 자신의 주변이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뚜렷한 현실적 대안 없이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갈 곳을 정하고 그만두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는 막연히 꿈만 꾸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꿈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초조해지기도 한다. 너는 꿈도 없느냐고 야단맞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완벽한 꿈을 꾸어야 한다는 또 다른 완벽주의, 멋진 꿈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스트레스가 된다. 그들에게 꿈은 가혹하다.

물론 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꿈 시장(市場)은 경기가 나쁘고 성장이 정체될수록 발전한다. 지난 수십 년간 누렸던 고성장 시대에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내 집도 마련하고 운 좋으면 가문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저성장 시대에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직장이 없다. 웬만한 곳에 취직해 보았자 학교 다니고 스펙을 쌓느라 쓴 돈을 회수할 수가 없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은 엄청난 좌절이다. 가던 길이 막히니까 새 길을 뚫어야 하는데, 이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때로는 꿈 시장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벌어진다.

꿈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강박적으로 멋진 꿈만 그릴 필요는 없다. 가만히 앉아서 가슴 뛰는 꿈만 찾는다면 과연 그 꿈이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 꿈이란 앞이 보이지 않는 오늘을 묵묵히 참아낸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미래가 아닐까. 정신의학에서는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조성(shaping)' 기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목표를 향해 접근할수록 그 과정에 대해 보상을 주는 방법이다. 너무 멋진 꿈은 나를 조롱하고 실망시키기 십상이다.

꿈은 가까울수록 좋다. 작은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꿈 길잡이이다. 삼십 분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은 아침이 하루하루 쌓일 때 비로소 꿈을 이룰 수 있다. 나중에 돌아보면 버텨낸 자기 자신이 대견하다. 꿈은 잠시 가슴을 뛰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오늘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영원히 가슴이 뛸 것이다. 꿈에는 완료형이 없다. 꿈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