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세련된 '신문고' 보셨나요?

    입력 : 2013.03.15 03:04

    [서울시청 조형물 '여보세요' 만든 디자이너 양수인]
    청사 지하 1층 스피커로 연결, 센서 아래 사람이 머물면 재생… 듣는 이 적은 발언은 음악 변환
    LED 그릇·엄지 투표 그림 등 내 창의력 원천은 의뢰인 '주문'
    요구 듣다보면 아이디어 나와

    청계광장‘있잖아요’에서 발언하는 시민. /사진가 진효숙
    서울시청 신청사에 최근 빨간색 '귀'가 생겼다. 지나던 시민들이 호기심에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기도 하고,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해보라는 안내문에 따라 "안녕하세요" 같은 말을 해보기도 한다. 이 조형물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청사 지하 1층 로비에서 스피커로 재생하는 진짜 귀 역할을 한다. 이름은 '여보세요'.

    '여보세요'는 양수인(38·삶것 공동대표)씨가 디자인했다. 1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양 대표는 "그저 소리를 틀어주는 게 아니라 발언을 평가하고 그 결과 도태가 일어나는 '소리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천장의 스피커에 센서를 달아 사람들이 그 아래 멈춰 서서 발언을 듣는 시간을 잰다. 측정 결과에 따라 발언마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낮은 얘기는 음악으로 바꿔 흘려버린다.

    양 대표는 앞서 2011년엔 서울 청계광장·서울역 광장에서 '있잖아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부스 안에서 이야기하면 목소리가 광장에 퍼지는 1인 발언대다. 그는 "'있잖아요'에 비해 이번 '여보세요'는 듣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준 프로젝트"라고 했다.

    양 대표는 이처럼 보는 이의 참여를 유도하는 디자이너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엄지투표'는 관람객의 문자메시지 투표로 작동하는 작품이었다. 관람객들은 벽에 붙은 그림을 보고 과연 디자인인지 아닌지, 찬반 의견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찬성표가 나오면 흰색, 반대표가 나오면 검은색 스프레이가 자동 분사돼 벽에 추상적인 그림을 그린다. "평소 하는 행동이 모두 디자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실수로 저희 회사 작업계약서를 제시했을 때 찬성표가 많이 나오는 걸 보고 놀랐어요(웃음)."

    '스트리트 라이프'는 바닥에 LED(발광다이오드)를 넣어 메시지를 띄우는 국수 그릇이다. 국수를 먹다 보면 바닥에서 반짝이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여보세요’앞에서“여보세요”를 외치는 양수인 디자이너. 서울시 신청사를 정면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 위치한 이 조형물은 꼬리가 청사 쪽을 향한 말풍선 같기도 하다. 양씨는“사람들이 작품을 보고서‘이건 귀인가요?’라고 알아봐줬을 때 기뻤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상상력이 기발한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으로 불린다. 스스로는 "굳이 따지자면 건축을 포함하는 광의(廣義)의 디자이너"라고 했다. "작가와 디자이너의 차이는 의뢰인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표현을 위해 작업하진 않습니다. 의뢰인이 부탁한 작업을 하며 제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더 어울리죠."

    흔히 작가, 디자이너라면 고집쟁이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양 대표는 "의뢰인의 주문을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뢰인이 직접 요구하는 조건, 은연중 내비치는 바람까지 충족시키는 해법을 찾다 보면 독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며 "제약이 많을수록 그걸 극복하려면 창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상 단계에서는 귀 모양이 아니었다"는 '여보세요'도 그렇게 얻은 결과라고 한다.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경청(傾聽)이라는 청사 콘셉트에 맞게 귀 모양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반영한 거죠. 어떤 모양까지를 사람들이 귀로 받아들일지 몰라 인터넷에서 의학용 귀 모형을 찾아가며 고민했어요. 설치 작업을 하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귀냐고 묻기에 '됐구나'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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