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히로인] [50] 속내는 늘 이별을 앞두고서야 드러난다

조선일보
  • 정이현 소설가
    입력 2013.03.15 03:05

    1995년 스물세 살이었다면 2004년에는 서른두 살이 된다. 이 당연한 '사실'은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진술이다. '비포 선셋'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은 남녀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를 잘 알고 있다. 전편인 1995년 작 '비포 선라이즈'를 통해서다. 전작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풋풋한 이십대 초반이었으며 아름답고 낯선 도시 빈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냈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당시 그들의 인연은 단 며칠뿐이었다. 이별에 임박해서야 마음을 확인한 그들은 6개월 후 다시 만나기로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를 알려주지도 않고서 영화는 끝나 버렸다. 여운은 미진했을 때 생기는 법이다. 그 사람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번씩 맥락 없이 떠오르는 얼굴은 오랫동안 볼 꼴 못 볼 꼴 다 겪으며 사귀었던, 헤어질 때 피차 밑바닥까지 다 보았던 옛사랑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너무 빨리 지나와서 더 아련한 한 시절, 스치기만 해서 더 짙은 여운이 된 미지의 대상이 더 궁금할 수 있다. 제시와 셀린느는 인생에서 가장 청명하고 자유롭던 순간의 공유자인 동시에 '지금은 없는' 그 모습을 증명해줄 서로의 유일한 증인이다.



    '비포 선셋'…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줄리 델피 주연, 80분, 미국, 2004년.
    십 년 뒤 제시는 그때의 추억을 소설로 써 작가가 되었다. 그들은 파리 서점에서 운명처럼 해후한다. 삼십대 남녀는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 유부남 제시는 아내와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권태롭게 흘리고, 셀린느는 삶의 피로를 냉소적인 표정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됐다. 생을 짓누르는 어정쩡한 무게감에 둘 다 꽤나 지쳐 있는 눈치다. 이제 천천히 녹슬어 가는 일만 남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둘의 이마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번에도 둘은 작별 시간을 코앞에 두고서야 진짜 속내를 나누기 시작한다. 영화는 또다시 딱 거기서, 해가 지기 전에 끝난다. 어둠이 세상을 덮은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올해 개봉 예정인 10년 만의 후속작 '비포 미드나잇'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줍게 웃던 스물세 살 청춘들은 이제 마흔한 살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95~2013, 화면 밖 관객에게도 공평히 흘러온 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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