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씨네칵테일] ‘빈라덴 작전’에 대한 ‘제로 다크…’의 차가운 관찰자 시선

입력 2013.03.14 14:57

'제로 다크 서티'에서 빈 라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CIA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판단력을 함께 갖춘 캐릭터가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10년간에 걸친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다룬 미국영화’라는 골격만 놓고 보면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는 ’악마를 응징한 위대한 미국의 영웅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성감독 캐서린 비글로가 찍어낸 이 영화의 시선은 독특합니다.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2011년 미군에 의해 사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냈지만, 승리에 환호하는 무용담(武勇談)적 분위기와는 거리를 둡니다. 그렇다고, 베트남 전쟁에 냉소를 퍼붓던 ‘플래툰(Platoon)’ 같은 반전(反戰) 영화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미국과 아랍 간 피의 대결 악순환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데 주력합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 울리는 비명같은 목소리들을 들려주면서 시작합니다. 9·11테러 현장에서 터져나왔던 사람들의 온갖 부르짖음입니다. 사상 최악의 테러 이후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10년 동안 무려 430조원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그런 범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탁월한 CIA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가 투입되면서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독특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건 마야의 캐릭터입니다. 이 사건에 관여한 실존 인물들을 뒤섞어 만든 허구의 캐릭터라는 마야는 한마디로 하면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갖춘 사람입니다.빈 라덴 추적에 10년간 몸을 던지고, 그 댓가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까지 받지만 그녀의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속 미군 주둔지에 대한 아랍 테러리스트의 자살 폭탄 공격 장면. 이 영화에서 사이사이 예측 못할 순간에 터지는 돌발상황의 묘사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듯 리얼하다.
하지만 그녀는 강철 같은 인간병기도 아니고, 조직이 시키면 뭐든지 해내는 저돌적 여전사(女戰士)도 아닙니다. 덩치 크고 험상궂은 군인들 틈바구니에서 활약하면서도 테러 관련 아랍인들을 미군이 고문할 땐 얼굴을 찡그리고 착잡해합니다. 이 여성의 개성과 매력은 이런 지점에서 나옵니다. 인간적이고 순수한 사람인 것이죠. 그녀의 그 무서운 분노도 공명심이나 강인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테러에 대한 인간적 분노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상관인 CIA 파키스탄 지부장이 ‘빈 라덴 추적은 그만 하고 새로운 테러에 대한 방지 작전에 힘 좀 쓰는게 어떠냐’고 하자 ‘당신 이름을 당장 빛나게 해 줄 잔챙이 테러리스트 잡기가 아니라 빈 라덴 체포 작전에 지원해 줘야 하는거 아닌가. 의회 청문회장에 서고 싶냐’고 매섭게 퍼붓는 대목에선 그녀의 열정이 불꽃처럼 빛납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세련된 연기로 감정의 디테일을 능란하게 표현합니다.

국가적 작전의 주역이면서도 작전 자체의 명과 암을 착잡하게 돌아보는 마야의 시선처럼, 이 영화는 미국이 벌인 빈 라덴 추적 작전의 이모저모를 싸늘하게 비춰냅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듯, 무조건 옹호하지도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영화엔 대낮 폭탄테러로 죄없는 시민들을 몰살시키는 아랍인의 만행이 있는가 하면, 빈 라덴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테러 관련자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때로는 거액의 스포츠카를 뇌물로 뿌리며 회유하는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미국 정보기관 공작의 이면도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철학박사 출신으로 테러 관련 아랍인들에 대한 신문을 맡아 고문도 서슴지않는 댄(제이슨 클락)과 같은 미국인의 아이러니칼한 처지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고문이 자행되는 현장에 틀어놓은 TV에선 “미국은 죄수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공허하게 울려퍼집니다.
'제로 다크 서티'의 종반부, 빈 라덴 은신처를 덮치는 미군의 공격 장면. 푸르스름한 야간투시경 시야처럼 처리돼 관객을 긴장 속으로 밀어넣는다.
특히 영화 종반부 빈 라덴의 은신처를 미군 특수부대가 공격하는 긴박한 대목에서는 이 작전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집약적으로 드러납니다. 캄캄한 한밤중, 중무장한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 대원들이 스텔스 헬기를 타고 민가를 덮쳐 빚어진 아비규환의 현장은 그저 적의 심장부에 대한 통쾌한 응징의 분위기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테러 심장부를 응징하듯 총을 쏘아대는 미군 모습 뿐 아니라, 가족의 처참한 시신을 보면서 영문도 모른채 울부짖는 어린애들과 여자들 모습도 반복해서 비춥니다. 빈 라덴의 사살을 확인한 미군 특공대원은 상부에 ‘잭팟을 터뜨렸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보고하지만, 그런 모습도 이 영화의 카메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미국행 수송기를 탄 마야가 자리에 앉아 혼자 터뜨리는 눈물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캐서린 비글로 감독이 세밀한 디테일과 폭탄 테러등 돌발 상황의 생생한 묘사로 리얼리티를 살려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합니다. 의외로 움직임이 적은 영화인데도 2시간 37분이나 되는 상영 시간동안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듭니다.

영화가 대놓고 ‘미국 만세’를 외쳤다면 거부감을 유발했을텐데, 비교적 냉정한 시선을 유지했기에 관객에 대한 설득력을 갖게 됐고, 아랍권의 테러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전략적으로는 훨씬 세련된 선택인지 모르겠습니다. 캐서린 비글로가 그런 계산 끝에 영화를 이렇게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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