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 지키기 위해 미국은 무엇을 버렸나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3.03.11 03:04

    역사 재조명한 美영화 잇따라

    스티븐 스필버그 '링컨'
    '노예 해방' 大義 위해 매관매직·협잡 서슴지 않은… 우리가 몰랐던 링컨 묘사
    캐스린 비글로 '제로 다크 서티'
    빈 라덴 추적하는 CIA요원, 다큐같은 서늘함으로 그려… 포로 고문 장면 뜨거운 논란

    '링컨'(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과 '제로 다크 서티'(캐스린 비글로)는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영화로 보인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했다는 것이나,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뻔히 아는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들은 '역사적 사실 재현 이상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링컨'과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사려 깊은 방식으로 그려내면서 미국이 '자유' '평등' '평화' 등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피와 부정으로 얼룩진 대가를 치러야 했음을 상기시킨다.

    20세기폭스코리아·유니코리아 제공
    매관매직·협잡 서슴지 않는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대통령 중의 대통령이다. 그가 없었다면 미국은 남북 2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을지도 모르며, 노예 해방도 지연됐을 것이다. 게다가 '정직한 에이브'란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성품 또한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50분이나 되는 '링컨'을 버티고 볼 수 있는 건 그가 훌륭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손을 더럽혀야 했는지를 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다.

    노예제 폐지를 위한 수정 헌법 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링컨(다니엘 데이-루이스)과 그의 각료는 반대파인 민주당 의원들에게 관직을 주고 찬성표와 맞바꾼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정치 전문 브로커를 동원하는 치밀한 '협잡', 시간을 끌어 종전(終戰) 협상을 피하기 위해 남부 대표들이 워싱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버리는 치사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 평단에선 미국 정치의 추악한 면을 그려낸 스필버그에 대해 놀랐지만, 그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착한 영화'를 만들어온 자신의 기질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관객들은 링컨의 '더러운 손'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노예 해방이란 압도적 대의(大義), 링컨을 역사 속에서 끌어낸 데이-루이스의 호연(好演)도 한몫 했다. '링컨'은 결국 전기 영화의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링컨은 끝까지 신화적 존재로 남는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고문 장면 논란 '제로 다크 서티'

    2001년 9월 11일 이후, 빈 라덴 제거는 미국의 지상과제였다. '제로 다크 서티'는 그를 사살하는 과정을 CIA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의 입장에서 보여준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과정은 지난한 투쟁이다. 그러나 그 투쟁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마야와 CIA 동료들의 대화는 건조하다. 아무도 애국심이나 사명감 같은 애끓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폭발물 제거반을 다룬 비글로 감독의 전작 '허트 로커'(2010)처럼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적이고도 세밀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관객은 영화에 쑥 빠져든다. 특히 네이비실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 침입해 그를 사살하는 과정은 나이트 비전(야간 투시)으로 촬영돼 불안과 긴장을 정점으로 고조시킨다.

    이 서늘한 영화는 미국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CIA 요원들이 포로들에게 물고문과 잠 안 재우기 고문 등을 해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이 문제가 된 것. 지난 1월 아카데미 위원회의 일원인 데이비드 클레논과 마틴 신, 전 미국배우조합장 에드 애스너는 "고문죄를 저지른 미국인들을 영웅화하는 영화"라며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존 매케인 의원 등은 "영화 속 고문 장면은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며 고문으로 빈 라덴의 거처를 알아냈다고 국민이 오해할 수 있다"면서 배급사에 '영화가 허구'라는 자막을 첨가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비글로 감독은 "묘사가 곧 지지를 뜻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야 캐릭터는 실존 인물을 '가공'한 것이고, 빈 라덴 사살 과정에도 '과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가 사실만 기록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진 않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마야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관객은 그를 우러러보지 않고, 다만 불쌍하게 여길 뿐이다. 상영중.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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