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윗집 깡패에게도 週末이 있을까

입력 2013.03.11 03:05

'적진을 아예 벌초' 김정은 협박에도 주말
외출 '감행'한 서울 시민들… 나치 공습 항전한
런던 시민들처럼 우리도 가끔은긴장하면 안 되나

선우 정 주말뉴스부장
20세기를 언론인으로 산 홍종인(洪鍾仁·1903~ 1998) 선생이 1960년대 후반쯤 후배 기자들에게 ‘언론의 자세’에 관해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고 한다. 나치 독일의 공습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 1940년대 전반의 영국. 그 상황을 국민에게 전하던 영국 신문의 이야기였다.

독일이 공격 목표를 영국 도시로 수정한 1940년 이래 런던은 밤마다 폭격에 시달렸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건물은 잿더미로 변했다. 1940년 9월 7일부터 1941년 5월 10일까지 이어진 ‘런던 대(大)공습’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4만3000여명, 파괴된 가옥은 100만채를 넘었다. 홍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더 타임스를 비롯한 영국 신문은 어디에서 몇 명이 죽고 건물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1~2단 기사로 작게 보도했을 뿐이야. 왜? 전쟁을 하는 나라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하거든. 죽는 게 겁나면 전쟁을 포기해야지.” 당시 런던 시민의 시체와 건물 잔해 위에 뿌려진 영국 신문엔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We shall never surrender)’란 처칠 총리의 항전(抗戰) 메시지가 실려 있을 뿐이었다.

그런 영국 신문이 공습 피해를 일제히 대서특필한 이례적 사건이 있었다. 역시 홍종인 선생의 말이다. “공습경보가 울릴 때 가장 많은 런던 시민이 몸을 피하던 대피소는 지하철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공습에 놀란 시민이 서로 허겁지겁 몸을 피하다가 지하철 계단에서 그만 어린아이를 밟아 죽인 거야. ‘사람이 죽는 게 전쟁’이라던 영국 신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아? 일제히 1면 톱기사. 제목은 ‘영국 시민은 야만인이었다’였어.” 폭탄이 무서워 이기적으로 변한 시민, 그래서 어린아이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시민 정신으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경제가 흥하든 망하든 일류 국가 대접을 받는다. 전쟁통에도 품격을 잃지 않은 역사 때문이 아닐까. 런던 공습 당시 국왕 조지 6세를 비롯한 영국인이 피란을 가지 않고 런던을 지킨 것은 전설처럼 이야기된다. 전쟁이 나자 대통령이 “수도 사수(死守)” 방송을 틀어놓고 피란을 떠났다는 어느 나라 이야기보다 훨씬 유명하다. 지도자, 언론, 시민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이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라”고 협박한 사실이 보도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이웃집 깡패가 이런 얘기를 했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문 닫아걸고, 자위 수단을 확보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주말 서울 도심은 차들이 꽉 들어찼고, 한강변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붐볐다. 이번 주말에 시민 외출을 막은 요소가 있었다면 김정은의 위협이 아니라 서울을 뒤덮은 미세먼지였다.

“애송이 독재자의 횡설수설에 흔들릴 필요 없다”는 자세는 미국 같은 강대국이나 어울리는 대범함이다. 애송이가 주말 서울에 폭탄을 날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지도자는 ‘지하 벙커’로 들어간다는데 시민은 어디로 들어가 항전을 준비할 수 있을까. 언론은 ‘죽는 게 겁나면 이길 수 없다’고 독려할 수 있을까. 눈앞에서 폭탄이 터질 때 어린아이를 위해 대피를 양보할 수 있는 시민의 품격은 갖춰져 있을까.
주중에 뭐가 그렇게 다들 힘들고 괴로운지 한국의 주말은 이미 ‘힐링의 시간’으로 변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사람들은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데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TV는 그런 수요에 맞추기 위해 오락 프로와 연성(軟性) 기사를 쏟아낸다.

협박을 일삼는 ‘윗집 깡패’에게도 우리와 같은 주말과 힐링타임이 있을까. 그런 상대에게 몇 번 정도 단단하고 긴장된 한국의 주말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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