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6·25전쟁 중에 붙잡은 포로를 활용하기 위한 '게릴라 교육'을 실시한 후, 이들을 남한에 침투시키는 전략을 폈던 것으로 드러났다.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가 미국의 국가기록보존소(NARA)에서 찾아내 7일 공개한 1951년 10월 27일치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는 북한이 '유엔 점령 지역을 게릴라를 통해서 통제하기 위해 특수전 수행을 위한 본부라는 새로운 분과를 조직했다'고 기록돼 있다.

'남한에서 활용하기 위한 북한의 게릴라 교육(North Korean Training of Guerrillas for Use in South Korea)'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이 새로운 분과는 남한 전쟁 포로들과 전쟁 중 붙잡힌 민간인들을 위한 북한 공산당 학교를 운영했다'고 했다. '이런 특수화된 훈련은 자기들의 고향 지역으로 되돌아간 게릴라들이 그들의 이웃 중 또 다른 게릴라들을 모집할 수 있는데 매우 효과적이어서, 북한 정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남한에서 게릴라 활동을 더 늘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1951년 8월 4일의 CIA 보고서는 '1950년 9월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간 남한 정치인 50여명은 7월 말 만주에서 정치 지도자들을 위한 훈련 과정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지도자들은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겨냥한 정치 선전을 준비하는 데 고용될 것'이라고 돼 있다.

CIA의 1951년 1월 5일치 '대한민국 포로들의 운명(Fate of ROK Prisoners)' 보고서는 북한이 당시 붙잡았던 공무원 대부분을 처형했다고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1950년) 11월 하순 대한민국 정부의 각 부 수장(首長)보다 계급이 낮은 공무원 수감자들은 북한 정권이 처형했다'고 했다.

또 1950년 10월 12일 보고서는 당시 다국적 천주교 가톨릭 사제 총 26명이 수감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CIA 보고서는 '9월 중순까지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던 남한 지역에서 붙잡힌 가톨릭 사제 26명은(미국인 3명, 국적이 확인되지 않은 비아시아계인 3명, 그리고 한국인 20명) 개천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