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출신인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나르는 사진이 어제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등산용 점퍼와 바지 차림에 목도리를 둘둘 감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였다.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원장 퇴임 다음 날인 6일부터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을 돕고 있다. 그는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계산대에 서서 손님들에게 물건값을 계산해 준다. 25㎡(약 8평) 크기 편의점은 김 전 위원장 부인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년 그의 대법관 퇴임 때 받은 퇴직금으로 차린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2006~2012년 대법관을 했고 2011년부터 2년 동안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작년 3월 신고한 재산은 9억5000만원이다. 집 한 채가 사실상 재산의 전부다. 대법관 출신인 그가 다른 법조계 고위직 출신 인사들처럼 대형 로펌(법률 회사)에 들어갔다면 한 달 근무한 것으로 편의점에서 몇 년 벌어야 할 돈 이상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분간 아내를 도우면서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1990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 50여명 가운데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취직을 하지 않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법원이 대법원에 올라온 민사 상고(上告) 사건 가운데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하는 비율이 평균 65%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를 맡은 사건은 그 비율이 6.6%로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러니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변호인 선임서에 도장 한 번 찍어주고 3000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전관예우의 핵심은 전직 대법관 예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후 변호사로서 전관예우 특혜를 누리면 대법관직(職)의 권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재판 결과를 왜곡할 수도 있다. 사법부의 공정성을 고민해본 대법관이라면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취직을 신중히 생각해보는 것이 정상(正常)이다. 장·차관으로 고급 관용차를 탔던 사람들 가운데 퇴직 후 버스·지하철을 이용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리를 해가며 운전사 딸린 승용차를 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벼슬이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과 같다. 자리를 떠나면 보통 사람 옷으로 갈아입는 게 정상이다. 김 전 대법관의 정상적인 행동을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 화제를 삼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정상 사회가 돼버렸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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