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1] 치과 치료 받느라 100만원… 생활비 바닥나 100만원… 대출로 연명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입력 2013.03.06 03:01 | 수정 2013.03.06 16:35

[4대 사회보험서 소외된 채 '빚의 악순환'에 빠진 사람들]
식당 일 찾는 60代 - "목돈 들어가는 임플란트, 건보 안 돼 엄두도 못내"
실직 후 빚더미 30代 - 은행빚에 카드론까지 쌓여 결국 대부업체까지 찾아가

지난 1월 서울 종로5가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만난 김영자(가명·66) 할머니는 표정이 없었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허드렛일자리가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할머니가 들고 있는 배낭엔 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초라한 옷차림, 낡을 대로 낡은 배낭과 자물쇠는 어울리지 않았다. "뭐가 들었길래 자물쇠를 다셨느냐"고 묻자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제일 중요한 게 들었다"고 했다. 배낭 안에는 면장갑, 고무장화, 앞치마와 일할 때 갈아입을 바지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지난 4일 아침 한 60대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직업소개소로 가기 위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 할머니는 “20년째 이곳에서 식당 청소나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소개받아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도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지난 4일 아침 한 60대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직업소개소로 가기 위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 할머니는 “20년째 이곳에서 식당 청소나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소개받아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도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이것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제일 소중해. 겨울에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 안 끼면 손이 땡땡 얼어. 저번에 일한 식당에서는 설거지할 때 데운 물 많이 쓴다고 아주 구박을 했어." 할머니는 지난 일주일 동안 딱 하루 일거리를 잡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점심때쯤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돌아왔다. "점심 드셨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 몇몇은 서울역 등에서 나눠주는 무료 급식을 타 먹는다고 했다.

"나한테 200만원은 굉장히 큰돈이야. 그 많은 돈을 덜컥 빚지면 갚을 재주가 없어."

할머니는 흔들거리는 앞니를 보여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자고 해." 비용이 200만원이 넘게 든다고 했다. 돈이 들까 겁이 나 치료를 시작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고 했다. 일이 없을 때는 거기서 돈을 좀 꺼내쓰고 일을 좀 해서 돈이 생기면 얼마쯤 갚는 식이다. 최근에 이를 2개 해 넣느라 한 번은 52만원, 또 한 번은 50만원이 들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할머니는 이 돈을 빚으로 메웠다. 할머니의 마이너스 통장엔 200만원 정도의 대출이 남아 있다. 일당 6만5000원 정도를 받는 할머니에게 200만원 빚은 갚지 못할 엄청난 돈이다. 일주일에 2~3일 일거리를 잡는다고 치면 한 달 벌이는 50만원 안팎이다. 방값 20만원, 식비 15만원, 전기요금 등 공과금과 휴대전화 요금 등 5만원을 빼고 나면 수중에는 고작 10만원이 남는다.

이혼 후 혼자서 키운 연년생 두 딸은 30대라고 했다. 큰딸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네일아트숍에서 일하고, 작은딸은 모 여대를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들이 지난 구정에는 용돈을 좀 줘서 마이너스 통장 빚을 좀 갚았다"고 자식 자랑을 했다. 하지만 이 딸들이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지 못한다. "나라에서 돈을 좀 주면 좋은데 나는 안 된다네. 나라에서 안 된다니 어쩔 수 없지." 할머니는 이날 일거리를 잡지 못했다. 아침 7시에 나와서 오후 6시까지 11시간을 기다렸지만 허탕이었다. "겨울에는 이런 날이 많아. 내일 또 나와봐야지."

김씨 할머니처럼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에는 200만원의 빚이 산더미나 다름없다. 일자리를 잃거나 돈이 많이 드는 치과 치료나 병이라도 걸리면 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진다.

지난 달 결혼한 김모(37)씨는 6년 전까지 프렌차이즈 영어학원 본사의 인사팀에서 근무했다. 월급은 300만원 정도였다. 회사가 어려워져 7개월간 월급이 밀렸다. 결국 부도가 났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은행 대출과 카드빚을 막을 돈이 모자랐다. 고용노동부에서 체당금(替當金·도산한 회사의 직원이 못 받은 임금을 고용노동부가 대신 지급하는 돈)을 1100만원 정도를 받긴 했지만 1500만원 정도는 못 받고 말았다.

실업급여는 실직 후 넉 달 간 매달 100만원 정도를 받은 것이 전부다. 실직 후 생활비 등으로 두 곳의 은행에서 2000만원을 빌렸고, 카드론도 1000만원 빌렸다. 결국 이 돈을 갚으려고 대부업체까지 찾아갔다.

그는 "월급이 끊기면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빚을 냈는데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돼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4대 사회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합쳐서 4대 사회보험이라고 부른다. 국민이 노령, 질병, 실업, 업무상 재해로 소득이 감소한 경우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1차 사회 안전망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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