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혼전(婚前) 재산 분할 계약

조선일보
  • 김광일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13.03.06 03:04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참을 수 없는 사랑'(2003)에서 매럴린은 결혼 사기꾼이다. 돈 많은 남자를 홀려 결혼과 이혼을 순식간에 해치운 뒤 위자료를 챙겨 떠난다. 텍사스 석유 부호가 걸려들자 순수한 애정을 증명하겠다며 '프리넙(prenup)'을 쓴다. 프리넙은 여러 결혼 조건을 명시한 혼전 계약서다. 대개는 이혼을 하더라도 상대방 재산을 나누지 않는다고 적는다. 매럴린은 프리넙을 내밀며 "돈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고 속삭인다.

    ▶매럴린이 쓴 프리넙은 고단수 유혹이었다. 자발적인 재산 포기에 감동한 부자 신랑은 결혼식장에서 "신부에게 큰 선물을 하겠다"고 한 뒤 프리넙 종이를 입에 넣어 씹어 삼킨다. 이혼할 경우 재산 절반을 떼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아내를 사랑한다는 표시다. 매럴린 역을 맡았던 캐서린 제타존스는 실제로 스물다섯 살 많은 마이클 더글러스와 결혼하면서 '바람피울 때마다 물 벌금 액수'를 적은 프리넙을 받았다.

    ▶유럽에서도 프리넙이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1억파운드 재산가인 독일 여자가 프랑스 남자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이혼해도 재산을 나누지 않기로 '무(無) 위자료' 계약을 맺었다. 막상 이혼하게 되자 프랑스 남자가 "그땐 내가 충분한 법률 지식이 없었다"며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냈다. 영국법은 불분명했다. '줘야 한다' '줄 필요 없다'며 1, 2심 판결이 엇갈렸다. 4년 재판 끝에 2010년 영국 대법원은 독일 여자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에도 결혼 전에 재산 분할을 계약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예전엔 연예인이나 재벌 같은 유명인들만 하던 게 요즘엔 일반인도 심심찮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한다. 재혼 부부뿐 아니라 초혼 부부도 많다. 수천억 유산을 받은 청년도, 재혼을 앞둔 50대 남자도 부부 재산 약정을 맺었다고 한다. 1958년 생긴 혼전 재산 분할 제도가 처음 빛을 본 건 법 제정 43년 만인 2001년 인천에서였다. 근래엔 해마다 스무 쌍쯤이 혼전 재산 약정을 한다.

    ▶부동산 갑부 도널드 트럼프는 책 '부자가 되는 법'에서 "아무리 사랑해도 혼전 계약서를 꼭 쓰라"고 충고했다. 우리 민법은 혼전 부부 재산 분할 계약에 관한 조문(條文)이 한 개이지만 프랑스 민법은 무려 195개 조항을 두고 있다. 조금 야박하다 싶긴 하지만 우리도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깜깜하다가 나중에 '현실'에 눈을 뜨게 될 예비부부들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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