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2] 적응은 무서운 체념을 부른다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3.05 03:04 | 수정 2013.03.05 11:42

    얼마 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직후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핵심 시설과 기관이 모두 모여 있는 서울에 만에 하나 핵폭탄이 터진다면 인명 피해 수십만~수백만 명은 물론이고, 국가로서 기능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무관심 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김 박사는 한국에서 오래 살지 않아 그래. 여기서 좀 살다 보면 금방 적응될 거야." 무엇에 적응하라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어차피 없다는 걸까?

    2010년 말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일이었다. 다른 나라 영토에 포격한다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이스라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자기들의 국방·외교 정책의 핵심이 '한국같이 되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 때 이스라엘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장거리 미사일 요격 위주인 미국 무기들로 무장한 이스라엘 방어군(IDF)은 불과 수십㎞ 근방에서 날아오는 헤즈볼라의 소형 로켓 포탄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MIT'라고 하는 테크니온 대학을 포함한 북이스라엘 도시와 시설들이 전략적 인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말로만 항의하곤 곧바로 자포자기하는 우리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Iron Dome)'이라는 근거리 방어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고 불과 5년 만에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아이언 돔은 지난해 11월 가자 지역에서 발사한 소형 카투사 로켓 포탄을 90% 이상 막아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아이언 돔은 동시에 포탄 수십 개를 추적하고 요격할 수 있지만, 북한은 장사정포 수천 개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개발해야 할 '아이언 돔'은 그만큼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통화하고, 말춤 추는 가수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손바닥 안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계와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정작 자기들의 가족과 재산을 지켜줄 방어 시스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우리나라의 문제는 과학도, 기술도, 돈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란 막연한 착각과 적응에서 오는 자포자기가 문제다. 바다달팽이 군소(Aplysia California)는 수관에 자극을 받으면 아가미를 움츠리는 자연적 반응을 보이지만, 아가미를 계속 자극하면 어느 순간부턴 자극에 무관심해지는 적응 효과를 보여준다〈위 그림〉.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에릭 캔들(Eric Kandel) 교수는 적응을 포함한 다양한 학습 과정의 신경분자생물학적 원리를 연구해 2000년 노벨상을 탔다. 적응이란 그만큼 원초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무섭다. 하지만 무척추동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발달한 대뇌 피질을 가진 우리가 바다달팽이와 비슷한 적응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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