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派獨 50년, 광부와 간호사들이 흘린 눈물

    입력 : 2013.03.04 03:04

    초과근무·야근하며 송금한 1억달러… 가족 먹여 살리고 경제발전 밑거름
    기억되기 바라며 다양한 행사 갖는 그들의 이야기에 고국이 귀 기울여야

    강인선 국제부장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우리의 역사는 독일의 광산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노력과 피와 땀으로 이룩된 것"이라면서 '독일의 광산'을 제일 먼저 언급했을 때 취임식 단상에 앉아 있던 윤행자씨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취임식에 공식 초청받은 파독(派獨) 간호사였다. 한독간호협회 회장인 윤씨는 "'우리가 고생한 걸 인정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함께 초청받은 파독 광부 모임인 글뤽아우프회 고창원 회장도 "조국이 우리를 찾아준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했다.

    취임식 공연에도 등장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미지가 그들이 파독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연상시키는 '구(舊)세대 코드'라고 마땅찮게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파독 인사들은 "한국이 이만큼 발전하기까지 작으나마 우리 공이 있었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1960년대 한국이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떠났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 8000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만1000여명이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일했다. 그들이 송금한 외화 1억달러는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들이 초과 근무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번 돈은 부모를 먹여 살리고 형제들을 공부시켰다.

    첫 파독이 있은 지 올해로 50년. 그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타국에서 피눈물 흘리며 일해 나라와 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그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서운함이 묻어난다. 한 광부 출신 재독(在獨) 사업가는 "형제들이 내가 독일에 광부로 일하러 갔다는 걸 부끄러워해서 오랫동안 비밀로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파독 간호사였던 한 여성은 "내가 죽도록 고생해서 조카들까지 공부시켰는데 다들 모른 체하더라"며 서운해 했다. 파독 광부로 갔다가 공부를 계속해 교수가 된 사람 중에도 "밝혀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광부 경력을 숨겨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라와 시대가 인정해주지 않으니 개인적인 고생담 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광부로 일하러 갔다가 독일에 눌러앉은 사람이 1200명, 계속 독일에 남아 있는 간호사 출신이 4500명쯤 된다. 독일 복지제도 속에서 안정된 노후를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의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 연금마저 일시불로 받아 송금한 후 고생스럽게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체험을 나눈다.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일찌감치 체험한 다문화 가정을 꾸려가는 법도 알리고 싶어 한다. 타국서 홀로 병들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알기에 외국인을 위한 호스피스 봉사 단체도 운영한다. 올해 독일에선 파독 50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기념식도 하고 사진전도 열고 책도 낸다. 후세가 그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길 바라서이다.

    누구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산악인도 정상에 올랐던 그 순간보다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지인들의 평가와 환호를 받을 때 몇 배나 더 기쁘다고 한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의 '그때 그 시절'이 주목받자 베트남전에서, 중동 건설 현장에서 피 흘리고 땀 흘렸던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달라"고 요청하는 목소리가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정치적 평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고, 그들에겐 그것이 명예이고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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