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가 외교력을 기울여야 하는 국가별 우선순위'를 묻는 국회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우선적 외교 파트너이며 중국은 미국 다음"이라고 답했다. 윤 후보자는 "중국의 경제적 비중,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중국 역할을 감안해 중국을 미국 다음의 외교 파트너로 본다"며 "일본·러시아도 중요한 외교 협력 파트너"라고 말했다. 한반도 주변 4개 국가의 중요성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로 순위(順位)를 매겨 공개한 것이다. 윤 후보자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취지에 맞지 않게 자료가 작성된 측면이 있다. 어떤 순위를 매길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나 국가별 중요도를 염두에 두고 외교 전략을 세운다. 우리 외교부도 내부적으로는 안보·경제적 중요성에 따라 지역별 거점(據點) 국가를 선정한다. 그러나 굳이 그 순위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뒷순위로 밀린 국가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북한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하기로 했던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보다는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다른 합의를 도출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중국과도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북핵 문제를 두고 미·일과 중·러가 대립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두 진영 간의 간극(間隙)을 좁혀야 할 입장인 것이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앞에 두고 윤 후보자가 이들 4강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겨 공개했으니 우리의 중재 역할이 제대로 먹힐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자해(自害)행위나 다를 게 없다.
윤 후보자가 일본을 중국 다음으로 거론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본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일본과 과거사 문제보다는 북의 핵실험으로 빚어진 심각한 안보 위기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외교장관이 쓸데없이 던져 놓은 실언(失言) 하나가 앞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장애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지 알 수 없다.
입력 2013.03.01. 03:10업데이트 2013.03.0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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