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 "콩 한쪽도 나눠먹던 우리 민족… 그 정신이 자본주의 새 모델"

입력 2013.02.26 03:03

[경제 부흥] "국민 개개인의 행복 크기가 국력의 크기"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선순환하는 질적인 경제성장 추구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사에서 제시한 국정 운영의 비전은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압축된다. 박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은 과거와는 달리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만 극복해나갈 수 있다"면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희망의 새 시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같이 힘을 모아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2차 한강의 기적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차 한강의 기적(한국형 고속 경제성장)과 경제성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성장의 목표와 방법론은 크게 다르다. 1차 한강의 기적의 지상 과제는 선진국의 원조 없이는 끼니를 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 경제의 빈곤 탈출이었다. 이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대기업·수출 중심의 중화학공업에 집중 투자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양적(量的) 성장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 경제는 15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경제성장의 과실을 일부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비해 2차 한강의 기적은 성장의 초점을 국가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민생에 맞추는 질적 성장을 추구한다. 국민 개개인이 부유하게 잘사는 국가가 결국 부강한 국가라는 논리다. 박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 크기가 국력의 크기가 되고, 그 국력을 모든 국민이 함께 향유하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면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자"고 했다.

[창조 경제] "한 개인이 국가의 가치 높이고 경제를 살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中企·벤처 키우고 청년 창업 지원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 부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경제 부흥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창조 경제를 꼽았다. 그는 “창조 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며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창조 경제론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고 고용률과 중산층 비율을 각각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박 대통령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중소·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 지원을 늘리고, 아이디어는 있지만 돈이 없는 대학생과 청년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2조원 규모의 기술 창업 국부펀드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경제가 추구해온 추격자(fast-follower) 전략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음에 따라 창조 경제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선도자(first-mover)로 변신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낸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기존 산업의 콘텐츠에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문화 콘텐츠가 유튜브라는 ICT 기술을 만나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엄마, 대통령님이 꼭 들어주시겠죠?" - 25일 오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박 대통령에게 바라는 희망과 기원의 글을 써서‘희망꽂이’에 넣고 있다. /전기병 기자

[경제 민주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어설 수 있는 사회"
도 넘은 중소기업 쥐어짜기… 대기업 총수 일가 불법행위 엄단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 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국민 모두가 희망을 갖고 땀 흘려 일할 수 있다”면서 경제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21일 국정 과제 발표에서 경제 민주화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비판에 대해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통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相生)을 강조하면서도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을 좌절하게 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서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에 종사하든 간에 모두가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를 엄단하기 위해 횡령 등 범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고 검찰 구형에 못 미치는 판결 선고시 원칙적으로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또 금산(金産) 분리 정책을 대선 공약보다 강화해 재벌 소속 모든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향후 5년간 5%로 낮추기로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한이헌 전 경제수석은 “재벌의 경쟁력이 협력업체 납품 단가 후려치기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쥐어짜기가 도를 넘었다”면서 “경제 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을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맞춤형 복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되도록"
수조원씩 드는 복지 정책… 실행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의 복지 정책 방향과 관련, “어려운 시절 우리는 콩 한 쪽도 나눠 먹고 살았다”며 “그 정신을 다시 한번 되살려 책임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계와 품앗이’를 예로 들기도 했다. 우리 전통의 공동체 정신을 복지의 기본으로 제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국민 행복 시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국민 맞춤형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으로 국민이 근심 없이 일에 종사하면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맞춤형 복지’를 위해 내건 공약은 ▲기초연금제 도입 ▲4대 중증 질환 치료 국가 보장 ▲기초생활보장 개편 ▲전면 무상 보육 등이다. 이 공약들은 국민이 원해온 것이 많고 국민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지만, 최소 수조원씩 많은 예산이 든다.

전문가들은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것은 시대적 추세이므로 복지를 적절한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맞지만, 국가 재정 형편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은 “복지는 한번 확대하면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 등을 보면서 이행 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새로 출범한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에도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복지 확대가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뒷받침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족한 복지를 내실을 기하면서 채워나가되 복지 서비스나 재정을 지나치게 확대해 제도 자체가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학→진로] "개인의 꿈과 끼가 클 수 없으면 희망도 못 자라"
전문가 "자유학기제, 준비 부족했던 과거의 실패 거울삼아야"

박근혜 대통령은 20분간 취임사를 하면서 2분 정도를 ‘교육 이슈’에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개인의 꿈을 이루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일은 교육에서 시작된다”며 “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학벌 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학벌과 스펙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꿈과 끼가 클 수 없고, 희망도 자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개인의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주춧돌로 삼아 국가가 발전하게 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꿈과 소질을 살려주자는 ‘박근혜 교육’은 그의 대선 공약인 ‘자유학기제’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체험 활동과 진로 탐색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강의식 수업을 토론·실습으로 대체해 우리 교육 시스템을 진학 중심에서 진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015년 도입을 목표로 한다.

박 대통령은 이 밖에도 ‘고교 무상 교육’ ‘반값 등록금’ ‘대학 입시 간소화’ 등을 임기 중 추진할 교육 정책으로 내세웠다.

교육계 인사들은 박 대통령의 교육 정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준비 없이 시작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의 진로 교육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다음 시행해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과거 ‘책가방 없는 날’같이 실패한 정책으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배영찬 입학처장은 “학생들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부실 대학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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