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8년차 이주호(52)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남의 결혼식에서 새신랑처럼 떨었다.

"평생 첫 주례거든요. 이따 주례석에서 더듬거리면 어쩌나…. 제가 쑥스러워서 주례 서달라는 청을 줄곧 사양했는데, 오늘은 취지가 좋아 흔쾌히 승낙했어요."

'작은 결혼식의 메카'로 자리 잡은 서울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에서 16일 올해 첫 결혼식이 열렸다.

코레일 직원 서영목(30)씨와 뉴시스 기자 류난영(31)씨가 양가 합쳐 200명을 모시고 부부가 됐다. 청와대 사랑채는 그동안 작은 결혼식 장소로 개방된 공공 기관 중 가장 인기 높은 곳이다.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결혼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선 직후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쳐온 '작은 결혼식' 캠페인에 공감을 표하고, 올해도 청와대 사랑채를 계속해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결혼식의 키워드는 '콘서트'와 '재능기부'였다. 신랑·신부는 틀에 박힌 식순을 버리고, 콘서트처럼 예식을 치렀다.

16일 오후 서울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2층에서 콘서트 같은 작은 결혼식이 열렸다. 인천시립합창단 수석단원 김종훈(맨 오른쪽)씨와 유럽에서 활동해온 소프라노 이수진(오른쪽에서 둘째)씨가 ‘넬라 판타지아’ 이중창으로 신랑, 신부, 혼주와 하객 200여명의 마음을 울렸다. 김씨와 이씨는 작은 결혼식 확산을 위해 이날 재능기부를 한 것이다.

문화예술 기획사 나눔커뮤니케이션즈에 소속된 쟁쟁한 음악인들이 "작은 결혼식 확산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무료로 축가를 불렀다. 저명한 음악 칼럼니스트 최영옥(50)씨가 "개성 있는 결혼식이 많아져야 한다"며 사회자로 나섰다. 청첩장도 공연 팸플릿처럼 찍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음대를 나온 플루티스트 손슬기씨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다.

유럽에서 활동해온 이수진(소프라노)씨가 뮤지컬 '마이페어레이디'에 나오는 '밤새도록 춤출 수 있다면'을 불렀다. 인천시립합창단 수석단원 김종훈(테너)씨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을 불렀다.

두 사람이 '넬라 판타지아'를 이중창으로 부르자 곳곳에서 "브라보!" 소리가 터졌다. 가슴이 찡해 눈물 괸 눈동자를 깜박거리는 하객도 있었다.

결혼식 비용은 피로연까지 1000만원이 채 안 들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신랑 아버지 서인곤(59·직장인)씨는 "평소 '결혼식은 소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자식들이 작은 결혼식 얘기를 꺼내자 바로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주례사에서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부모에게 기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 안타까웠다"면서 "고령화 사회가 온 만큼, 부모는 노후에 대비하고 자식들이 자기 역량으로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본지와 여가부는 다음 달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올해 청와대 사랑채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릴 예비부부들을 공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