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 잡았던 우두, 간암까지 잡을까

조선일보
  • 이길성 기자
    입력 2013.02.13 03:17 | 수정 2013.02.14 06:45

    말기 간암에 탁월한 효과… 국내 연구진 주도로 확인
    정상 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에 기생해 죽이는 원리 "이르면 5년 후 상용화 가능"
    일부 환자, 2년 넘게 생존중 다른 암도 효과있는지 연구

    천연두 박멸의 1등 공신인 우두 바이러스가 말기 간암에도 효험이 탁월하다는 사실이 한국 연구진이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부산대 황태호 교수(항암바이오연구소)를 비롯한 한국 연구진과 미국·캐나다 연구진 등으로 이뤄진 공동 연구팀은 유전자를 변형한 우두 바이러스가 말기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기존 항암제보다 최소 2~3배 이상 늘린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시험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의 의학 분야 자매지인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실렸다.

    연구진은 우두 바이러스가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암세포와 바이러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TK 유전자'를 조작한 것이 핵심 비결이었다. 이 유전자는 암이나 바이러스의 증식을 촉진하는 TK 효소를 분비한다. 연구진은 우두 바이러스의 TK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증식에 필요한 효소를 분비할 수 없게 된 바이러스는 암 환자의 몸에 들어가면 암세포에 기생하면서 TK 효소를 빼앗아 자신이 증식하는 데 사용한다. 암세포는 그 여파로 증식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TK 유전자가 없는 정상 세포는 공격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항암 바이러스를 말기 간암 환자 30명에게 한 달간 투여했다. 그 결과 저용량 바이러스를 맞은 15명은 평균 6.7개월, 고용량 바이러스를 맞은 나머지 15명은 평균 14.1개월을 더 생존했다. 특히 최고 용량을 맞은 환자는 2년 넘게 생존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기존 간암 치료제는 말기 환자의 생존 기간이 평균 3개월이었다.

    JX-594라고 이름 붙여진 이 항암 바이러스는 미국 제네렉스(Jennerex)사가 최초 개발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대 황태호 교수 연구진과 연세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녹십자 등이 참여했다. 공동 연구였지만 임상시험은 한국이 주도했다. 이번 논문에 등장하는 환자 30명 중 13명도 한국 환자였다.

    제네렉스 데이비드 컨 박사와 함께 10여년째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황태호 교수는 "JX-594는 현재 7개국 120명의 간암 환자뿐만 아니라 대장암과 신장암 등 다른 암 환자를 대상으로도 국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며 "이르면 4~5년 정도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두(牛痘) 바이러스

    소 마마로 불리는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이용해 천연두 예방접종인 종두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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