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9] 협상의 달인이 되는 법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2.12 03:02 | 수정 2013.03.05 11:43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몇 달 전 중동 카타르에서 학회에 참석할 때 그곳 전통시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돈으로 몇 만원 정도 하는 기념품을 사고 바로 가게에서 나가려고 하자 주인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인은 왜 자기랑 가격 흥정을 하지 않느냐며 불쾌해했는데, 그의 논리는 대략 이랬을 것이다. 흥정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처음부터 자신의 물건 가격이 너무 싸거나, 아니면 이 외국인 눈엔 자기하고 이성적인 협상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다. 가격 흥정하길 즐기고 자존심 강한 아랍인 가게 주인에게 두 시나리오 모두 별로 기분 좋을 리 없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수요와 공급을 통해 가장 적절한 가격을 찾아간다는 게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수요와 공급의 절대값을 알 수 없는 대부분 상황에선 협상을 통해 가격을 합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기준을 통해 가장 적절한 가격을 찾아가는 것일까?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할 때 궨닻 내리기 효과궩가 큰 영향을 준다.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할 때 궨닻 내리기 효과궩가 큰 영향을 준다.
이 질문에 대해 미국 심리학자 트버스크와 카네만은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몇 나라가 국제연합(UN)에 가입돼 있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대부분 사람이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무작위로 피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첫 그룹은 '10'이라는 숫자를 받게 하고, 다른 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65'라는 숫자를 주었다. 이 숫자들은 물론 UN 가입국과는 아무 상관없었고, 피험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피험자들에게 UN 가입국 수를 물으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10이라는 숫자를 받았던 사람들은 가입국 수가 '25'라고 추측하였지만, 65라는 숫자를 받았던 피험자들은 가입국 수가 대략 '45'라고 답했다. 두 그룹은 무작위로 나눴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론 차이가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일한 물건을 (a)제한 없이 살 수 있거나, (b)한 사람당 4개 또는 (c)12개까지 살 수 있도록 허락했더니, 소비자들이 평균 3.3개(a) 3.5개(b) 7.0개(c)를 구매했다는 결과가 있다. a와 c 사이엔 2배가 넘는 차이가 났다.

행동경제학에선 이런 현상을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른다. 마치 배가 던져진 닻에 끌려가듯, 인간의 뇌는 처음 접촉한 경험이나 정보에 끌려간다. 결국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마치 닻 던지듯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확률적으로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끌려오게 되므로 닻을 던진 사람은 '갑', 끌려오는 사람은 '을'이 된다.

북한의 계속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으로 시끄러운 요즘, 그들이 던지는 닻에 대한민국이 계속 끌려가는 을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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