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태우 기자] 어느덧 SK 선수단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은 '캥거루 코트'가 열렸다. 날카로운 지적이 오고 갔지만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다만 이만수 감독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벌금 폭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SK 선수단은 7일(현지시간) 오전 8시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스포츠빌리지에서 캥거루 코트를 열었다. 캥거루 코트는 코믹 인민재판을 일컫는 말이다.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인민재판의 특성을 비유한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단 자체 상벌위원회로 인식되고 있다.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가 무기명으로 서로의 잘못된 점이나 실수를 적어 투표함에 적어넣으면 선수로 구성된 재판부가 잘못을 가려 벌금을 부여하는 자체 규율 법정이다. 만약 이의를 제기해 인정이 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실패하면 2배를 내야 한다.
올해도 몇몇 사례들이 선수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이광근 수석코치는 모 선수에게 치약을 사오라고 시키고 치약값을 주지 않았다가 벌금 10달러를 받았다. 치약값이 3달러임을 감안하면 손해보는 장사.
두 번째 홍백전에서 야수 MVP를 수상한 안정광은 "야구선수로서 너무 말랐다. 걸그룹을 보는 기분"이라는 고소를 당했다. 고소인은 같은 내야수 김성현. 이에 팀 주장인 박정권 판사는 "너도 만만치 않으니 둘 다 윗옷을 벗고 비교하라"고 지시하고 확인(?) 결과 안정광이 더 말랐다고 판결해 안정광은 벌금 10달러를 받았다.
캥거루 코트 단골 손님인 안치용은 일과 시작인 전체 워밍업 중에 매번 화장실을 간다고 고발당했다. 본인이 급히 인정하여 5달러 벌금으로 감형됐다. 정근우는 "라커룸에서 노래를 자주 불러 시끄럽다. 노래는 노래방에 가서 하라"고 고발당했다. 정근우는 인정할 수 없다며 누구냐고 따졌고 한참 후배인 3년차 정진기가 고발한 것으로 알려져 모두들 박장대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정근우도 벌금은 피해가지 못했다. 역시 벌금 10달러.
윤길현은 정경배 수비코치가 번트 사인을 내고 펑고를 강하게 쳐서 손가락을 다칠 뻔했다며 고발했다. 정 코치는 "실전에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선수들 전원이 야유를 퍼부었다. 이에 박정권 판사는 "그럼 배팅 연습 20분 동안 번트만 대면 좋겠냐"며 근엄하게 꾸짖은 뒤 10달러 벌금형에 처했다.
이만수 감독도 벌금을 피해가지 못했다. 캠프에서 골프 카트를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이 감독은 선수들이 "카트를 고장내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며 고발했다. 이 감독은 이를 바로 인정하며 앞으로는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정근우 검사는 "지켜보겠다. 조심하시라"라고 하며 벌금을 5달러로 감형했다는 후문이다.
캥거루 코트는 이만수 감독의 제안 속에 2011년 마무리 훈련 때 처음 실시했다. 고된 훈련 속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해 호응도가 높다.
이만수 감독은 캥거루 코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피곤하고 힘든 훈련 일정 중에 잠시나마 박장대소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행사 중 하나다"라면서 "배려 속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그것을 깨뜨리면 동료간 우애도 약해지며 팀워크도 저해된다. 법정에 서는 피고들은 위트있는 지적에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하고 배려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SK는 8일(현지시간) 세번째 홍백전이 실시한다. WBC 대표팀에 합류하는 정근우 최정 윤희상은 9일 오전 플로리다 캠프를 떠나 귀국길에 오른다.
2013년 플로리다 캠프 캥거루 코트의 모습. 선수 재판부의 모습(기사 상단), 누가 더 말랐냐를 놓고 검증에 들어간 안정광과 김성현(기사 가운데).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