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인터뷰] "임기중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천안함 폭침… 北 연평도 도발땐, 공군 뒀다 뭐하냐고 했다"

조선일보
  • 최현묵 기자
    입력 2013.02.05 03:01

    이명박 대통령 本紙 인터뷰… 퇴임 앞두고 임기 5년의 소회 말하다

    [천안함·연평도]

    "천안함 수색작업 현장서 한주호 준위 만났었는데… 숨졌다는 소식 듣고 큰 충격
    연평도때 '확전 말라' 지시?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 軍출신들이 안된다고 하더라"

    이명박 대통령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임기 5년 중 가장 가슴 아픈 일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을 꼽았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당한 뒤에 자작극이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초반 정부에서 "(사건 원인에 대해) 예단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북의 공격이 아니라 우리 군의 실수로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떻게 군의 실수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날 수 있겠나.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 어뢰를 찾아낸 건) 우리 국운(國運)이었다고 생각한다. 1번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어뢰를 찾아냈을 때 미국도 놀라더라. 그런데 (일부에서) 이걸 가짜라고 하더라. 나는 이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본다. 좌파 진보라기보다는 종북(從北) 세력이라고 봐야지. 이번에 은하 3호를 건져냈을 때 거기에도 번호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해선 가짜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쐈다고 발표했으니까 아무 소리도 없는 것 같다."

    ―두 동강 난 천안함을 건져올릴 때 심정이 어땠나.

    "오죽했으면 (사건 직후 직접) 현장에 갔겠나. 그때 한창 수색 작업 중이던 한주호 준위를 만났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 물이 차고 깊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괜찮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천안함 46용사에 이어 한 준위까지 숨져 내가 충격을 두 번 받았다. 한 준위 아들은 학교 선생님이 됐고, 전사자의 한 어머니는 받은 포상금을 함정 기관총을 사는 데 보탰다. 나는 그런 분들이 계셔서 종북 세력이 있어도 우리나라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시 청와대에서 "확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확전하지 말라고 얘기 안 했다. '공군 뒀다 뭐하냐'고 했다.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에) 배석했던 한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한테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 거다. 그 후 나도 책임 추궁을 했다. 군 출신들은 확전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군 지원에 대해 말하니 당시) 군 고위관계자가 교전 규칙을 얘기하면서 '확전하면 안 된다. 미군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길로 합참과 국방부를 찾아가서 '교전 규칙은 지켜야겠지만 이건 우리 영토를 침범당한 사건이다. 국토를 지키는 건 교전 규칙과 관계없다'고 명령했다. 나중에 보니 교전 규칙에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못하게 했으니 그랬던 거다.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까 우리 군이 놀라더라. 그때 이후 (북 도발 시)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라고 했다. 우리 영토를 공격받으면 발원지와 지원 세력까지 육·해·공으로 공격하라고 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군이 많이 변화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천안함 폭침을 "재임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라며 "(퇴임 이후) 앞으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 전사자들의) 묘지를 자주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광우병 촛불 시위]

    "취임 초로 돌아가도 美와 쇠고기 협상할 것"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인데… 협상 반대는 상식 밖의 일
    촛불때 경찰청장 불러 말했다, 절대 사람 안 다치게 하라고
    그랬더니 컨테이너 쌓더라"

    ―광우병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임기 5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촛불 시위는 계획적으로 한 거라 피할 수 없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진보 단체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까 이미 그 사람들이 '이걸(시위를) 크게 한번 해서 정권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몇 명 다치면 정권을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내가 경찰청장 불러서 '절대로 사람이 안 다치도록 하라' '(경찰이) 후퇴해도 좋고 (시위대가) 청와대 들어와도 좋으니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정권 초반이어서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할 수도 있고, 시위가 격해지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가 유모차까지 끌고 나오니 (경찰이)컨테이너 박스를 광화문에 쌓아놓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독재자도 아니고 군사정권도 아닌데 사람이 다치는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나. 또 세계가 어떻게 보겠나. 그랬더니 한쪽에선 너무 약하게 대응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심하게 했다고 하더라."

    ―취임 초로 다시 돌아가면 그래도 미국과 쇠고기 협상 타결할 것인가.

    "난 했을 거다. '글로벌 코리아' 하려면 FTA를 해야 하는데, 전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를 안 먹는 국가(의 지도자)가 그게 무슨 지도자인가. 그거(쇠고기 협상) 안 하면 내가 대통령 자격이 없지. 그런 상식 바깥의 일(쇠고기 협상 반대)을 대통령이 된 사람이 타협하는 건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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