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현 대중문화부 방송음악팀장

노장 여성 로커 패티 스미스(67)가 지난 2일 내한 공연을 했다. 1975년 데뷔한 그는 미국과 영국 클럽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 청춘들의 열광적 호응을 끌어냈던 펑크(Punk)의 대모(代母)이자 원조로 통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섹스 피스톨스와 더 클래시가, 미국에서는 패티 스미스와 레이몬스가 '3개 코드만 알면 누구나 록을 할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고 명쾌하고 강렬한 펑크 미학을 전파했다.

복잡한 구성의 노래와 현란하고 예술적인 연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던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는 이들에게 '공공의 적(敵)'이었다. 섹스 피스톨스의 자니 로튼은 '나는 핑크 플로이드를 증오해(I Hate Pink Floyd)'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록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반발심의 표현이었다. 이들이 강조하는 펑크 문화의 정수(精髓)는 '네 느낌을 직접 연주해 세상과 소통하라'는 'DIY (Do It Youself) 정신'에 있었다. 이후 록을 '만만하게' 보는 밴드가 쏟아지며 음악계에 창의적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공이 컸다.

2013년 벽두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음원(音源) 논란도 들여다보면 펑크 태동기 록계(界)의 대립을 떠오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 프로를 통해 3개월간 작곡을 배웠다는 '초보' 박명수가 작곡해 발표한 노래들이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 정상을 휩쓸었고 연예제작자협회를 비롯한 기존 가요계 일부 인사들은 "좌시할 수 없는 사태"라며 반발했다.

"방송사가 프로그램 인지도를 앞세워 음원 시장을 잠식해가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다를 바 없다"는 연제협 등의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눈부신 테크놀로지 발전에 힘입어 누구나 작곡에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폭로(暴露)'됐다는 데 있다. 대학에서 작곡과를 나오거나 피아노·기타 같은 선율 악기를 제대로 다뤄야 시도해볼 수 있다고 여겨지던 작곡의 신비한 위상이 깨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요계 일각의 반발 심리 밑바닥에는 이에 대한 염려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요즘 전통적 의미의 예술 창작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진화, 인터넷의 일상화에 따라 자신만의 고아(高雅)한 성채(城砦)를 마냥 지키고 있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를 촬영하고 작곡을 하고 블로그를 통해 소설과 만화까지 발표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예술의 창작자와 소비자는 빠르게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1930년대에 이미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예술의 아우라(Aura)는 사라지지만 감상과 접근 측면에서 예술의 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은 예술 창작과 유통의 민주화까지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펑크적인 'DIY 정신'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결과가 마냥 장밋빛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