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울산광역시 한 일식집에 중년 부부 네 쌍과 미혼 남녀 세 쌍이 모였다. 울산 삼산동에서 15년째 밀면(밀로 만든 냉면) 전문점 '삼산밀면'을 운영해온 신현규(63)씨 부부가 아들 3형제의 신붓감과 예비 사돈을 초대한 '합동 상견례' 자리였다. 4년 연애한 차남 강욱(33)씨, 8년 연애한 막내 명철(31)씨에 이어 내내 '솔로'였던 큰아들 재욱(34)씨까지 결혼할 여자를 사귀자, 신랑 아버지인 신씨가 "가족이 될 분들이니까 다 같이 한번 모이십시더" 했다. 이 자리에서 신씨가 예비 사돈들에게 말했다.

"허례허식 하지 말고 한날한시에 합동결혼식 하면 안 좋겠습니까?"

삼산밀면은 소문난 맛집. 울산역에 내려간 기자가 행인 셋을 차례로 붙들고 "밀면 어디가 맛있어요?" 하자 셋 다 "삼산밀면 가이소" 했다.

하지만 창업주 신씨는 마흔 중반까지 밀면 장사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산 서면에서 유복한 집 막내로 자랐다. 고향에서 대학을 마치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울산에서 중소기업에 자재 납품하는 회사를 차려 연 매출 20억원을 올렸지만, IMF 외환 위기 때 거래처가 망해 30억원 가까이 떼였다. "태화강에 뛰어들라 캤는데 마 추와서 몬 뛰어들었십니더."

빚 갚느라 원래 살던 집(356㎡·108평)을 팔고 3분의 1 넓이 전셋집으로 옮겼다. 그 집에서 신씨는 은행원 출신 부인 이연숙(62)씨와 밀면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연구했다. 그때 아들 3형제는 대학생과 군인이었다.

울산 삼산동 ‘삼산밀면’ 본점 주방에서 창업자 신현규씨와 부인 이연숙씨가 아들 3형제와 함께 시원한 밀면, 고소한 만두, 매콤한 비빔밀면을 선보였다. 이 집 3형제는 다음 달 2일 울산 중구청에서 합동으로 작은 결혼식을 올린다.

밀면 가게 해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신씨는 재기에 성공했다. 수십억 빚을 지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가장이 지금은 밀면 가게 두 곳 말고도 은행과 증권회사가 입점한 대형 건물을 가진 100억원대 자산가로 다시 섰다.

아들 3형제 혼기가 차면서 신씨는 결혼에 대해 두 가지 소신을 세웠다. 우선 '작은 결혼식'이다.

"15년 전에 골프 한 번 쳤다꼬 청첩장 돌리뿔고, 사업상 한두 번 밥 묵었다고 자식 결혼식 오라고 하고…. 각자 인생관이 다르지만, 청첩장 보내고 욕 안 묵을라면 최소한 두세 달에 한 번 소주 묵는 사이는 돼야 한다는 기 소신입니다. 제가 사돈한테 그랬습니다. '요새 조선일보에서 작은 결혼식 하라 해쌓고, 정부에서도 간소하게 하라 해쌓던데, 좋은 일이니까 따라야 안 되겠습니까?'"

또 다른 소신은 배우자 고르는 안목에 대한 것이다. 그는 아들 3형제에게 "우리 집은 밥 묵고 살 끼 있으니 (상대가) 잘살고 몬살고 따지지 말라"고 했다.

"제가 살아보이 어느 집이건 좋은 사람이 들어오면 집안에 우애가 넘치고, 각박한 사람이 들어오면 잘살아도 결국은 불편해집디다. 요새 사람들이 '수준 맞춰 결혼한다'고 해쌓던데 저는 한 번도 아아들한테 그런 소리 안 했십니더."

그는 "돈은 모으라고 버는 게 아니라 쓰라고 버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 셋을 가리키며 "야들이 아부지 나이 됐을 때 지 힘으로 벌어서 친한 사람들 모시고 소주 한잔 묵으면서 '여 계산 내 할게' 해야지, 젊은 나이에 (부모 돈으로) 외제차 몰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대로 장남 재욱씨와 막내 명철씨는 각각 8년, 차남 강욱씨는 10년째 가게 일을 돕고 있다. 신씨 부부는 "야들은 사장 아들이 아니라 봉급쟁이"라고 했다. 대학 나온 세 아들이 편하게 카운터 보지 않고, 셋 다 주방에서 땀 뻘뻘 흘리며 국수를 삶는다. 신씨는 "여름이면 하루에 손님 4200명을 치르는데, 온종일 티셔츠 10번 갈아입도록 땀이 난다"면서 "주인 아들이 더 힘들게 일해야지, 판판이 놀면 직원들이 안 따라온다"고 했다. 오히려 보수도 박하게 준다. 다른 주방장 봉급은 350만원이지만 아들 셋은 200만원 받다가 지난달부터 230만원으로 올랐다.

이들이 데려온 신붓감의 공통점은 열심히 사는 중산층 가정 딸이라는 점이다. 큰 사돈은 외항선을 오래 탔다. 둘째 사돈은 1t 트럭을 몬다. 셋째 사돈은 현대차 생산직으로 퇴직했다.

예단도 간소하게 했다. 신씨네 아들 3형제는 다음 달 2일 울산 중구청 웨딩홀(240석)에서 함께 결혼식을 올린다. 신씨는 지난주 청첩장을 돌렸다. 친척집 10곳을 포함해 총 62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