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최근의 일이든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든 정신적으로 아주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정신의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증상이 세 가지 있다. 첫째, 큰 충격 자체는 이미 지나갔음에도 마치 그 일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불안해한다. 둘째, 사소한 자극에도 극도로 예민하게 놀라며 긴장한다. 셋째, 그런 불안과 긴장을 나름대로 해결해 보려고 특정한 것에 집착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큰 충격을 받은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동체나 민족이 큰 충격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구성원 전체가 이런 특징을 집단적으로 가지게 된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 분단, 6·25전쟁, 냉전 체제하에서 남북한의 극한적 대립, 국가 건설 과정의 격렬한 사회적 갈등 등을 통하여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더 충격적인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 민족은 거대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정신적 특징을 이미 집단적으로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특징은 남한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북한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모두 나타난다. 남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불안과 긴장을 극복하려고 극단적으로 돈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게 열심히 일하였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경제적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 잘살게 되자 이제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게 되었다. 돈은 있어도 건강한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불안과 긴장을 극복하려고 극단적으로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수령(首領)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는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까지 매달렸고 3대 세습이라는 '정치적 기적(?)'을 만들었다. 굶어 죽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돈을 단 한 번의 미사일 발사로 날리면서도 권력과 힘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충격에 지금도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분단 58년이 되었다. 두 세대가 흘러가 버린 것이다. 이제는 남(南)과 북(北)의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되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통일의 준비이고 시작이다. 역사의 병적인 증상을 남과 북의 사람들이 지금처럼 강하게 가지고는 통일이 된다 할지라도 더 큰 갈등과 상처를 서로에게 줄 가능성이 크다.
그 치유의 과정은 먼저 남한에서 시작돼야 한다. 첫째, 사회제도적 차원의 치유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화두가 복지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되어 왔던 국민의 가난에 대한 불안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의 문제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작은 공동체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서로를 잘 알고 보살펴주며 의미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작은 공동체적 체험이 사람들의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다. 셋째, 남북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실제로 함께하는 치유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에는 2만5000명이 넘는 북한 이탈 주민이 있다. 지금 비록 부분적인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나눔으로써 마음의 분단을 극복하는 최초의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한에서 이런 치유들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요청하고 통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적 기적과 민주화의 기적을 이룬 우리다. 분단과 분열이 만들어낸 정신적 상처와 충격을 극복하는 '치유의 기적'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