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로소 오바마의 '정치적 본색'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워싱턴포스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18분간의 취임 연설에서 향후 4년간 미국을 이끌어갈 자신의 비전을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게 역설했다. 폴리티코는 "1기 취임 연설이 '함께 머리를 맞대자'로 요약될 수 있다면, 이번은 '나를 따르라'였다"고 했다.
◇진보 어젠다 추진 의지 천명
오바마의 연설은 '진보 성향 어젠다의 백화점'이라고 할 만했다. 그는 건강보험 개혁 정책, 여성·동성애자 인권, 총기 규제, 기후변화 등 이슈를 빠짐없이 언급하며 2기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논란과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이슈들이다.
그는 "세니커폴스(1848년 여성 권리 획득을 위한 최초의 회의 개최지), 셀마(1965년 인권운동인 몽고메리 행진 개최지), 스톤월(1969년 동성애 인권운동 중심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창조됐다"며 소수자 인권 보호를 강조했다. 특히 미 대통령 취임 연설에 '동성애자(gay)'라는 단어가 쓰인 것인 역사상 처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는 지난 4년간 경제위기 대처와 재선(再選)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번 연설을 통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2기 임기 중에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고 했다.
◇우회적으로 공화당 공격
오바마는 연설에서 "지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하나의 국가로, 하나의 국민으로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했지만, 1기 연설 때와 달리 자신에 대한 반대 세력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수사(修辭)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절대주의를 원칙과, 구경거리를 정치와, 비방을 토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며 공화당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건강보험법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우리를 '포획자(takers)의 나라'로 만드는 것을 막아준다"고도 했는데, 이 역시 건보 개혁법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 공화당을 우회적으로 '포획자'로 지칭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취임 연설이라기보다 선거 유세 연설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오바마는 대외정책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협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강력한 안보와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영원한 전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패권주의적 일방 외교'였다는 비판을 받은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공화당 "대통령이 혼란 부추겨"
공화당은 이날 오바마의 연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난 여러 차례 취임 연설을 봐왔지만 이번처럼 '함께 일하자'는 메시지가 없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했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의 피터 세션스 하원의원도 "대통령이 이 나라에 가져다줄 것은 '혼란'이라는 점이 오늘 연설로 명확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