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기 높은 휘슬러 컴포트 프로 압력솥 콤비. 국내 백화점 등에서 65만원에 팔리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주방브랜드인 휘슬러. 좋은 품질로도 유명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백화점 등에서 '명품' 군으로 분류돼 있다. 그동안 주부단체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등이 조사한 결과 국내 가격에 해외보다 20% 이상 비싸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휘슬러 제품이 국내 경쟁사보다 5~10배 가까이 비싸진 이유는 또 있었다.

대리점 등에 비싼 판매 가격을 유지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정해진 가격보다 할인해서 판매할 경우 대리점 등에 최고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제품 공급을 중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통 채널 간의 경쟁을 방해한 휘슬러 코리아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국내 주방용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제한한 독일계 기업 휘슬러 코리아에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1억75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5월 이후 국내서 판매하는 압력솥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점 등에 소비자 가격을 지정해 해당 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걸 금지한 점 등이 적발된 것이다.

휘슬러 코리아는 독일 국적 휘슬러(Fissler)사가 100% 출자한 국내 자회사로, 고가 압력솥·냄비·프라이팬·전기 요리판 등의 주방용품을 독점수입·판매한다. 2.5L 압력솥의 경우, 국내 브랜드인 피앤풍년 압력솥은 10만원 내외인데 비해 휘슬러 제품은 58만원으로 5배 이상 차이나 '고가 명품'으로 소비자에게 인식돼 왔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 결과 휘슬러 히트 상품인 '프리미엄 솔라'(1.8L) 압력솥의 수입원가는 10만4000원에 불과한 데도, 소비자 판매가격은 49만원에 달했다. 유통마진만 78.8%나 됐다.

휘슬러 측은 대리점 등에서 할인 판매하는 걸 막아 이윤을 챙겼고, 반면 소비자들은 강요된 가격을 '바가지'를 쓰며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휘슬러 코리아의 2011년 매출은 545억원으로 대리점이나 특약점을 통한 방문판매가 매출의 44%를 차지했다.

휘슬러 코리아 측이 가격 감시를 위해 채택한 방법은 다양했다. 압력솥 소비자 판매가격을 지정했는데, 대리점이나 특약점이 이 가격 밑으로 팔 경우 적발해 제재를 가했다. 1차 적발 때는 경고와 벌금 100만원이지만 2~4차 때는 벌금 200만원에 제품 공급가격을 인상하고, 5차 적발 때는 제품 공급을 중단한 것이다. 영업사원은 3차 적발 때 퇴사, 특약점은 3차 적발 때 계약 해지를 각오해야 했다.

또 2011년 8월부터는 유통점 덤핑방지자정위원회를 두고 판매 가격을 간접적으로 관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대리점의 소비자가격 준수 정도에 따라 A~D등급을 부여하고 포상하거나 제재하기도 했다. D등급은 '무기한 출고정지'나 '퇴출' 등의 제재를 받았다. 실제로 벌금이나 제품공급 중단 등의 제재를 받은 대리점·특약점이 전체 49개 가운데 19개에 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 브랜드 안에서 유통점들의 가격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주방용품을 구입할 기회를 봉쇄한 것"이라며 "대리점·특약점 간 서로 가격할인을 하지 않기로 담합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경쟁 저해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