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결국 풀이라오"

조선일보
  • 김경은 기자
    입력 2013.01.21 03:02

    시인 이성복, 10년 만에 시집 "칼로 베면 주변에 냄새 진동 죽으며 주변에 경고하는 것"

    시인 이성복(61)은 80년대의 전설이다. 스물여덟이던 1980년 첫 번째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시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로 당대의 상처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 후 30년간 황지우·기형도 등 동년배들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혀왔다.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등 시 창작도 활발히 했다.

    하지만 2003년 여섯 번째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끝으로 시를 떠난 듯 보였다.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문학과지성사)는 그런 그가 10년 만에 낸 일곱 번째 시집이다.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열린 신라 시대 진흙 불상 전시회 이름에서 시제를 따왔다.

    "신라 때 진흙 부처를 만들기 위해 여자들이 머리에 흙을 이고 나르면서 불렀던 향가 '풍요(風謠)'의 한 구절입니다. 이두를 풀이하면 '래여'는 '오다', '애반다라'는 '섧더라'는 뜻인데, 이 세상에 왔더니 슬픔만 맛보고 가더라는 말이오. 인생이란 놈이 참…."

    이성복은 이번 시집을 "이전에 낸 여섯 권의 시집과 예순을 넘긴 내 삶을 똘똘 말아 정리한 인생 마지막 종합 진단 보고서"라고 정의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혜화동 학림다방에서 이성복 시인은“대학 시절 여기서 노른자 띄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인생을 고민하고, 문학에 대해 토론하던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추억했다. /이명원 기자
    "내 개똥철학으로 '래여애반다라'를 한 글자씩 풀어봤더니 각각의 단어가 인생 10년 단위로 대응됩디다. '세상에 와서(來·0~10세), 배움을 통해 남과 같아지려 애쓰다가(如·11~20세), 그게 잘 안 되니까 슬픔을 맛보고(哀·21~30세), 맞서 대들다가(反·31~40세), 많은 일을 겪고(多·41~50세), 비단처럼 펼쳐지다(羅·51~60세)'라는 것이오. 나는 독자들이 내 요번 시집에서 한없이 눈물이 흐르면서도 손쓸 도리가 없는, 속절없이 불행한 운명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이성복은 1977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에 시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년 전 자진해서 물러나기 전까지 12년간 계명대 교수(문창과)로 재직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살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이 "저 새끼는 온실에서 자란 놈이다"일 정도로 평탄하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도 "나 같은 러키보이가 많을까. 한편으론 그게 내 핸디캡"이라며 "나는 분명 도스토옙스키가 될 수는 없는 작가이기에 자꾸만 내면으로 침잠하는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모든 인간은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디다. 잘난 놈도 못난 놈도 결국은 섹스하고 먹다가 죽는다는 겁니다. 칼로 풀을 베면 주변에 풀냄새가 진동해요. 죽어가는 풀이 이웃 풀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건데, 그 경고라는 게 참 무용해요. 도망갈 수도 없는데…. 그게 못 견디게 허무하고 아파요."

    이성복은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 바로 그 풀"이라며 "쓸모없을 줄 알면서도 계속 경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이여// 어떻든 봄은 또 올 것이다'('래여애반다라 9'에서)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그는 "다 토하고 나면 말간 물이 나온다. 내 시집이 그 말간 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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