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대통령에겐 너무나 먼 500m

    입력 : 2013.01.20 23:30 | 수정 : 2013.01.20 23:58

    대통령과 비서진 작은 집무공간서 어깨 부딪치며 일하는 백악관
    우리는 대통령과 비서진뿐 아니라 국민과의 거리도 좁히려 노력해야

    강인선 국제부장
    요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을 500m 떨어진 비서동 가까이 옮길 것이냐가 관심사다. 대통령 집무실을 지금처럼 비서동에서 걸어서 8분 거리에 있는 본관에 따로 두는 구조로는 대통령과 비서진의 원활한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거론되는 사례가 한 건물 안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일한다는 미국 백악관 모델이다.

    몇 년 전 백악관의 공식 업무가 끝난 뒤 대통령과 비서진이 일하는 공간을 둘러본 일이 있었다. 듣던 대로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다. 살림살이 규모로 따지자면 세계 최대일 텐데 과연 이 공간 안에서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특히 대통령의 집무실과 그 옆의 서재를 봤을 때는 함께 갔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고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 크지도 않은 그곳이 바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은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의 거리는 가까웠다.

    그 덕에 백악관에서는 그야말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한다. 대통령이 불쑥 옆 사무실 문을 열고는 "그 일, 잘 돼가고 있어?" 하고 물어 참모를 놀라게 하고, 외빈이 찾아왔을 때 예정된 참석자가 아닌 옆방 비서진을 추가로 급히 불러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대통령과 참모들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본관을 개조해서 비서들을 가까이 두는 방안, 대통령이 비서동에 자주 나가서 일하는 방안 등을 고려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비서진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만큼이나 자주 거론되면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청와대와 국민 간의 상징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마치 깊은 산골에 들어앉아 있는 듯해서 대통령이 구중심처(九重深處)에 은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반 국민으로서도 자연스럽게 청와대 앞을 지나갈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가 '청와대행' 8000번 버스였다. 하지만 이 버스는 국민과 대통령의 소통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4년 8개월 만에 사라졌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도 멀게만 느껴지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가까운 곳으로 옮기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일이 있다.

    지금 청와대 집무실 재배치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백악관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겠지만 백악관 외부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 한가운데 있는 백악관 근처의 직장인들은 늘 그 앞을 자연스럽게 지나다닌다. 백악관 뜰 안에 방송 장비가 가득하면 '오늘 기자회견이 있나 보다' 짐작하고, 며칠 조용하다 싶으면 대통령이 해외 순방 갔겠거니 한다.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은 백악관 앞 단골손님이다. 1인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 상주하고, 원정시위대가 몰려들기도 한다. 사전신고만 돼 있으면 경찰도 제지하지 않는다. 백악관 주변의 이 어수선한 분위기는 대통령이 미국의 국민과 정치·정책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대통령과 비서진 간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대통령과 국민 간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려는 다양한 시도는 경호와 예산 문제라는 장애물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과거 어떤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한, 500m 거리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의 통합 또는 재배치를 해내면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한층 더 쉬워질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국민 가까이, 세상 속으로 한발 더 움직이고 있다는 실감을 주게 되면 그렇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리 큰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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