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수도방위사령관(중장)은 지난 14일 서울 도곡동의 아파트로 한 할머니를 찾아갔다. 올해 79세의 유정화씨.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 이들을 저지하다 현장에서 숨진 최규식 당시 종로경찰서장의 부인이다. 신 사령관은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라며 큰절을 올렸다. 유씨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맞절을 했다.
최 전 서장은 1968년 1월 21일 밤 10시 30분쯤 무장공비 31명이 서울에 침투했을 때 청와대에서 약 300여m 떨어진 청운중학교 후문 근처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신 사령관은 "최 서장께서 김신조 일당을 일찍 막지 않으셨더라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해 엄청나게 큰 혼란이 왔을 것"이라고 했다.
◇"최규식 서장 부인, 朴 대통령 덕분에 약국 열어"
사건 다음 날인 1968년 1월 22일 새벽, 유씨 집에 누군가 찾아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기자였다. 유씨는 "낌새가 이상해 종로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더니 '서장님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으셨다'고 하더라"고 했다.
유씨는 "영안실에 안치된 피투성이 남편을 보고서야 꿈이 아닌 현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최 서장 호주머니에선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 민석씨의 사진이 나왔다고 한다.
이제 51세가 된 민석씨는 "아버지는 업무 때문에 항상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가셨다고 들었다"며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기절했던 것만 생각난다"고 했다.
장례는 국립경찰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1계급 특진(경무관)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이듬해엔 청와대 부근 자하문 고개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과 세 딸(7세·4세·1세)에게는 가장의 빈자리만 남았다.
유씨는 "원래 집이 가난했고 남편이 종로경찰서 부임 전 용산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불우아동 자활원을 짓는 데 돈을 보태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유씨에게는 결혼 전에 딴 약사 자격증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유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배려로 정부종합청사 내에서 간이약국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육영수 여사는 최 서장이 살아있을 때 자활원을 방문해 최 서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朴 대통령 서거 이후 발길 끊겨"
박 전 대통령 서거 몇 해 후 유씨의 약국은 정부종합청사에서 나와야 했다. 기일 때마다 유씨 집을 찾던 군인과 경찰, 청와대 관계자들의 발길도 서서히 끊겼다. 1983년 1월 20일, 최 전 서장의 기일(忌日)을 하루 앞두고 그의 어머니가 78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가 손자·손녀에게 남긴 유언은 "아버지 없다고 더 이상 서러워 마라"였다고 한다.
유씨는 빚을 얻어 약국을 차렸다. 서울 미아리에서 경기도 성남 등으로 약국을 옮겨 다녔지만 잘 안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 약국을 팔고 다른 약국에 약사로 취직했다. 민석씨는 "유품으로는 아버지가 보던 책 몇 권만 남았다"고 했다.
민석씨 가족은 매년 1월 19일과 20일 할머니와 아버지 제사를 연이어 지낸 뒤 21일 종로경찰서에서 주관하는 자하문 동상 앞 추모식에 참석한다. 유씨는 허리가 아파 추모식에는 못 간 지 오래됐다고 한다. 유씨는 "이제는 경찰들도 우리 남편 얘기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세월이 오래되면 다 그런 것이겠지만…"이라고 했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민석씨의 딸 현정(13)양은 작년 6월 현충원에서 열린 호국문예백일장에서 1등을 해 국방부장관상을 받았다. 현정양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할아버지 이야기는 왜 교과서에 나오지 않나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민석씨는 "대통령을 살해하려던 김신조씨는 기억되고, 아버지와 같은 분들은 잊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