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열렸다, 법당이 떠올랐다… 時空이 통했다

    입력 : 2013.01.18 03:02

    [건축 거장들 - 나의 대표작] [2] 이성관의 '탄허기념박물관'
    대표적 고승 탄허를 기념하는 건물 전통 사찰 공간을 현대 건물에 녹여
    개폐식 외벽, 격납고 업체가 만들고 법당은 강당 안에 떠 있는 듯 설계
    내외부 공간 확장·통합 기술 돋보여

    이성관
    건축가 이성관(65·한울건축 대표)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서울 강남구 자곡동 '탄허기념박물관'을 꼽았다. 불경 번역 등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 고승인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다.

    지난 13일 이 건물 실내에 들어서자 박물관 관계자가 물었다. "건축하는 분이세요?" 전국에서 답사 오는 건축가·건축학도들이 그만큼 많다고 한다. 이 건물은 "사찰(寺刹)의 현대적 해석에 기술력을 더했다"는 점을 평가받아 2010년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제1회 김종성건축상을 받았다.

    건물에선 현대적 외관에 녹여낸 전통 사찰의 공간 구성이 엿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건축가는 "일주문 같은 여러 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선 뒤, 법회·강연을 여는 누각을 지나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에 이르는 사찰의 진입 동선을 현대적 공간에 맞게 응용했다"고 했다.

    탄허기념관의 경우 건물 진입로에 늘어선 108개의 열주(列柱)가 산문(山門·사찰에 들어서는 문)의 역할을 한다. 시간을 머금은 듯 녹슨 철을 사용해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둥들이다. 3층 건물의 1층은 주차장으로 쓰기 때문에 실내에 들어서면 바로 2층이다. 전통 사찰의 누각처럼 강연이나 각종 행사를 하는 강당을 여기에 뒀다. 3층에는 법당이 있다. "사찰에서 마지막에 대웅전에 이르듯 상징체계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법당을 끝에 둔 것"이라고 한다.

    실내에 들어서면 전시장이 바로 나오는 여느 박물관과 달리 이곳에선 탄허 스님 유품 등을 전시한 공간이 3층에 있다. "누군가를 기리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잖아요. 일상의 공간인 외부에서 전시장으로 바로 이어지기보다는 심리적인 점이지대(漸移地帶)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①탄허기념박물관 2층 강당 안에 떠 있는 듯한 3층 법당. 벽을 열면 두 공간이 통합된다. ②유리 외벽에 금강경 전문을 새긴 외관. ③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접어 올릴 수 있게 만든 강당 벽. ④108번뇌를 상징하는 진입로의 108개 철(鐵) 열주와 창살 모양 지붕. /한울건축 제공
    탄허기념관은 기술을 바탕으로 공간을 확장·통합하는 건물이다. 가령 2층 강당의 외벽 일부를 위로 접어올리면 바깥에 조성한 수면(水面)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만들 수 있는 창호 회사를 찾지 못해서 항공기 격납고 등을 설계하는 회사에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3층의 법당 벽도 모두 열면 2층 강당과 통하는 공간이 된다. 법당은 강당 안에 '공간 속 공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기둥을 세우는 대신 강당 벽에 보를 가로지르고 그 위에 법당을 얹어서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인다.

    사용자들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건물을 좌식(坐式) 활동에 맞춰 설계했다. 강당 바닥에 앉은 사람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도록 창문 높이를 30㎝ 정도로 낮췄다. 건축가는 "불교엔 절을 하는 의식이 있고 사람들도 좌식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건물도 여기에 맞췄다"고 했다.

    건물의 외관은 담담하다. 외벽 한쪽을 파내 처마의 형태와 단청의 색깔을 은유적으로 남겨둔 점, 유리로 마감한 한쪽 벽에 금강경 전문을 새긴 점 정도가 두드러진다. 금강경의 문구는 "건축물의 성격을 쉽게 읽게 해주기는 하지만 다소 직설적이고 표피적이라 내부 공간이 보여줄 내공을 감쇄시킨다"(2010 한국건축가협회상 심사평)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성관은 이에 대해 "콘크리트벽과 유리 사이에 간격이 있기 때문에 햇빛이 비치면 글자들이 입체적인 형상을 띤다. 경전의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강당 바닥이나 안에 앉은 사람들의 옷에 비치는 효과도 고려했다"고 했다. "건물의 콘텐츠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벽면 하나에만 남겨둔 것이죠. 드러나지 않지만 호감 가는 외관, 익명적인 건축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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