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TALK] 계사년 뱀 마케팅의 역설… "뱀의 흔적을 지워라"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3.01.11 03:02 | 수정 2013.01.12 07:43

    "은근해야 팔리더라고요. 대놓고 뱀처럼 생긴 건 안 팔리고, 뱀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정도가 딱 좋대요."

    뱀띠 해를 맞아 요즘 패션업계에선 '뱀 마케팅'이 한창이다. 뱀을 연상시키는 보석과 액세서리가 쏟아져 나왔고, 옷이나 구두에도 뱀을 활용한 디자인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들 업체도 속으론 고민이 있다. 최근 '뱀 모티브 컬렉션'을 새로 내놓은 한 명품 보석회사는 "뱀이 부(富)를 뜻한다는 속설 때문에 무조건 잘 팔릴 거라고 장담했는데, 뱀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한 제품은 생각보다 잘 안 팔린다. 오히려 물결무늬처럼 뱀의 움직임만 얼핏 느껴지는 디자인이 더 인기였다"고 했다. 굵은 뱀이 똬리를 튼 모양의 팔찌나, 뱀 머리가 새겨진 반지는 반응이 그렇게 뜨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시계 회사도 올해 새로 '계사년 한정판'을 출시했지만, 시계에 그려 넣은 뱀은 사실 뱀인지 아닌지 금세 알아보기 어렵다. "추상화처럼 표현해서 거부감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한 명품 구매 대행 회사는 사람도 삼킨다는 거대한 뱀 '아나콘다'를 연상시키는 액세서리와 옷을 잔뜩 해외에서 사오기로 했다가 계획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호피 무늬도 무서운 것보단 귀여운 게 팔리는 추세인데, 뱀 가죽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뱀을 너무 세밀하고 생생하게 구현한 옷은 반응이 별로인 것 같아 계약을 취소했어요." 이 회사는 '아나콘다 대전'이라는 광고 문구를 홈페이지에서 슬쩍 빼고 '애니멀 룩(Animal look·동물의 일부분을 본떠 디자인하는 패션)'이라는 표현을 대신 넣기도 했다.

    반면 뱀 가죽을 아주 가볍게 활용하거나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바꾼 경우는 인기가 꽤 좋다고 한다. 최근 E 화장품 회사는 유명 미국 디자이너와 협업해 '뱀 가죽 파우치(화장품 등을 넣는 작은 가방)'를 선보였지만, 뱀의 느낌만 냈을 뿐 실제 뱀 가죽은 쓰지 않았다. 몇몇 운동화 회사는 일부분에만 뱀가죽을 닮은 소재를 덧댄 제품을 내놨다. 한 패션 디자이너는 "뱀을 부드럽고 귀엽게 보이게 하는 게 큰 숙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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