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정·사회부 차장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 도쿄에 가면 대개 '제국(帝國)호텔'이란 곳에 머문다. 국회의원이니 일본 최고 전통과 권위의 호텔을 이용해야 격에 맞는다는 이유일 것이다. 참여 정부 당시에 이런 이야기가 돌았다. 출장지 숙박 스케줄에 '제국' 글자가 적힌 것을 본 386 의원들이 '일본 제국주의 호텔'이라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주일대사관은 고민했다. 격이 낮은 호텔을 알선했다가는 이번엔 "무시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짜낸 잔꾀가 통했다고 한다. '제국'을 '임페리얼'로 고쳐 적어 올리니 별말 없이 자고 가더란 것이다. '임페리얼호텔'은 '제국 호텔'의 영문 표기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일화에 나오는 원숭이도 아니고 386 의원들이 두 호텔이 같은 곳이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은 그저 기록에 남는 스케줄에 '제국' 글자가 들어간 것이 싫었을 뿐이다. 당시 일부 386 권력자들의 허위의식을 비꼬는 우스갯소리로 돌던 이야기였다. '운동권' 어쩌고 해도 국회의원이 되면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 기업 주재원과 무박(無泊) 산행을 간 일이 있었다. 금요일 밤 약속 장소에 상대가 벌겋게 그을린 얼굴로 1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근무 시간에 한국 국회의원 3명과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아는 의원이냐"고 물으니 "대사관에서 갑자기 할당받았다"고 말했다. 술자리 접대는 다른 기업 몫이었다. 국회의원 외유 시즌 때 일주일 동안 4일을 골프장에 간 주재원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예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 갔다가 만난 주재원은 일부 한국 국회의원들이 유럽 외유 때 프랑크푸르트를 거치는 은밀한 이유를 들려줬다. 명목은 '선진 경제 견학'이라고 적어놓지만 인근 비스바덴의 남녀 혼탕 구경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원들 모시느라 일주일에 세 번 혼탕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들려준 일부 국회의원의 혼탕 추태는 '19금(禁)'에 해당하는 너절한 이야기라서 차마 지면에 옮길 수가 없다.

변방의 주재원 중에는 국회의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국회의원을 모신다'는 것은 '회사 허가 받고 최고급으로 논다'는 뜻이라 모처럼 회삿돈으로 질펀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난 주재원은 "여긴 재미난 곳이 없다는 소문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다들 스페인 마드리드까지만 왔다가 돌아간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민폐(民弊)의 최고봉'을 꼽는다면 부부 동반 외유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남편이 국회의원을 모시고 골프장에 간 동안 아내는 사모님을 모시고 쇼핑센터에 가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의 구겨진 자존심은 얼마 후 주재원의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주재원들이 겪는 또 다른 고역은 모셔야 할 국회의원이 현직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만 끝나면 낙선자들이 '해외 연수'라며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을 홀대했다가 훗날 큰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오기 때문이다. 선거가 4년마다 있고 보궐선거까지 실시되기 때문에 이들이 돌연 부활해 자신을 씹고 다닐지 모르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가히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에 비견할 만하다.

국회의원 외유는 그 자체가 국민 민폐다. 해외 견학이 필요하면 제 돈 주고 하면 된다. 아니, 허접쓰레기 같은 해외 견학이 필요한 수준이라면 애당초 국가를 경영하는 자리에 앉아선 안 된다. 새 정부는 '국회의원 외유 및 해외 접대 금지법'을 추진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