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프랑스에서 보름 사이 폭염으로 1만명 넘게 숨졌다. 그중 81%가 일흔다섯 넘어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노인들은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무더위에 지쳐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앞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 쓰러졌다. 이웃과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지라 노인들 시신은 한참 지나서야 발견됐다. 언론은 '노인들을 죽인 것은 노화(老化)가 아니라 고독이다. 노인을 모시는 아시아 경로(敬老) 사상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서울에서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살았다. 예순일곱이던 그는 "서울 지하철이 노인에게 공짜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외국인이어서 경로 혜택은 못 받았지만 노인을 위하는 우리 사회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노인이 젊은이에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풍경이 재미있다. 소설 소재로 삼을 만하다"고도 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일부 지각없는 젊은이들이 5060 세대가 박근혜 후보를 많이 지지했다는 걸 빌미 삼아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말자"고 SNS에서 선동하고 있다. 며칠 전 쉰 살 역사학자 전모씨가 트위터에 "사람은 나이 들수록 자기중심적이고 사회 정의감이 약해진다"고 했다. 그는 '경제학자의 예측'이라며 "2030년대엔 노인 암살단이 생길지 모른다. 노인이야말로 사회적 비용만 늘리는 잉여인간이 아닌가"라고 했다. 나이 쉰이면 철이 들어도 한참 들었을 텐데 생각의 두께가 창호지만도 못한 사람이다.

▶앨버트 브룩스의 미래 소설 '2030년 그들의 전쟁'에 노인을 노린 테러가 등장한다. 2030년 미국인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기자 세대 갈등이 심해진다. 노인 복지 비용을 대느라 갈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젊은이들이 일흔 넘은 노인의 투표권을 빼앗자고 주장한다. 버스에 탄 노인들이 사살되거나 요양원과 노인 아파트 단지에서 폭탄 테러가 터진다. 그래도 소설은 세대가 타협해 불합리한 의료 복지 제도를 고치는 대안을 찾으며 끝난다.

▶'노인 암살단' 발언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곳이 지금 우리 사회다. 역사학자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루고 소설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린다고들 한다. 5060 세대를 조롱하면서 '노인 암살단'론을 편 역사학자의 상상력이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닐까. 그도 2030년이면 예순여덟이 된다. 그때 밥이나 축내는 '잉여인간' 취급을 당해도 좋다는 얘기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