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희천발전소의 부실·날림 공사는 공사 초기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희천발전소 건설돌격대 출신 탈북자 A씨는 24일 "건설장비와 자재도 부족한데 무조건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100주년(2012년 4월 15일) 전까지 완공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차례나 공사 현장을 찾은 것도 '격려'보다는 '중압감'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주체철·주체섬유도 모두 가짜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김정일은 단순히 희천발전소 누수 현상 때문이 아니라 허위 보고가 만연했다는 사실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일은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을 겨냥해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주체철'과 '주체섬유'도 모두 실체가 없는 엉터리였다는 보고에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주체철'은 용광로에 코크스 대신 무연탄을 넣어 만드는 철이고, '주체섬유' 비날론은 석유가 아닌 무연탄에서 얻은 카바이드를 원료로 만든 합성섬유다. 원료를 수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주체'란 말이 붙었다.
하지만 김책제철연합기업소가 2011년 11월 개발했다고 보고한 주체철 용광로는 가짜로 드러났고, 주체섬유를 생산하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전력과 원료 부족으로 정상가동을 못 하고 있다. 김책제철소의 경우 올해 초 지배인 리히헌, 책임비서 리철훈 등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숙청된 것도 허위 보고 때문이었다.
소식통은 "잇따른 허위 보고로 김정일은 강성대국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강추위에 희천발전소 건설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다 건강에 무리가 왔던 것"이라고 했다.
◇부실·날림 공사의 결정판
희천발전소는 영하 30도에도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강행했고, 모래가 부족해 대신 흙을 채워넣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건설 관계자는 "콘크리트를 강추위 속에 양생하거나 흙 같은 불순물이 섞이면 강도가 낮아져 부스러지거나 균열이 발생한다"고 했다.
댐에 물을 채우는 담수(湛水) 작업은 통상 댐을 다 만든 뒤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발전소 조기 가동을 위해 댐이 3분의 2 정도 완성된 상황에서 서둘러 담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공사에 섣부른 담수 작업까지 더해져 누수 현상을 악화시킨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공개한 희천발전소 사진들만 봐도 댐 곳곳이 누수로 인한 얼룩투성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희천발전소는 가동은 되지만 심각한 누수 현상으로 발전에 차질이 빚어져 발전용량이 당초 목표(15만㎾)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중국에서 도입한 특수 접착제와 시멘트로 수차례 보수공사를 실시했지만 아직까지 누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건설 전문가는 "콘크리트 댐은 누수 현상이 있더라도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보수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하면 균열이 심해져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재외공관과 외화벌이 일꾼들에게 "해외의 선진기술을 비밀리에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 공관원들이 중국 싼샤(三峽)댐 건설업체와 유럽의 유명 수력발전 기업들과 접촉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적인 전력난
북한이 희천발전소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만성적인 전력난 때문이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북한의 발전용량은 697만㎾, 발전량은 230억㎾h다. 한국의 각각 9%, 5% 수준이다. 그나마도 특권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과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군수공장들에 전기를 우선 공급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은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 전력난을 극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에 매진했다. 그중에서도 평양 전력난 해소를 목표로 한 희천발전소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란 정권 차원의 과제와 맞물린 프로젝트였다.
말년에 김정일이 희천발전소 건설현장을 수시로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거동도 불편한 김정일은 틈만 나면 첩첩산중에 있는 희천발전소를 찾아 '2012년 완공'을 다그쳤다"며 "그만큼 북한의 만성적인 전력난 극복이 절박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