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2] 기억을 살 수 있다고?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2.24 23:30 | 수정 2013.03.05 11:44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는 "그 아무리 아름다운 장미도 결국 남는 건 이름 하나뿐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름 외에도 남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장미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의 기억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면? 아니, 거꾸로 내가 원하는 기억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기억은 시각·청각·후각같이 신경세포들의 '스파이크(spike)'라고 불리는 1000분의 1초 단위의 활동 전위(電位)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스파이크들의 빈도·동기화·패턴 등을 통한 시각 정보처리 코드는 이미 부분적으로 판독됐다. 기억 코드 역시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이다. 그리고 만약 미래에 기억 코드가 판독된다면 전기적 자극을 통해 기억에 관련한 정보들을 뇌에 직접 전달할 수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원하는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과정을 '뇌에 글쓰기(brain writing)'라고 부른다. 완벽한 브레인 라이팅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남아 있다. 글쓰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글을 쓴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A4 백지 면적의 99%를 유지하고 나머지 1%만 검은색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검은색과 백색의 차이를 통한 코드로 우리는 원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뇌에서도 비슷하게 자극해야 할 신경세포들과 자극해서는 안 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 하지만 전기적 자극을 줄 경우 어쩔 수 없이 모든 신경세포가 자극을 받는다. 이건 마치 A4 용지 전체를 먹칠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럼 어떻게 원하는 신경세포들에만 자극을 줄 수 있을까?

    최근에 개발된 '광유전자적' 기술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광유전자적 기법에선 우선 원하는 신경세포들만 선택해 유전자 조작을 한다. 이렇게 선택된 신경세포들은 전기적 자극뿐 아니라 특정 파장의 빛에도 반응을 보인다. 결국 빛의 파장 조절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뇌에 직접 전달할 수 있다.

    광유전자적 기법을 사용하면 원하는 정보를 뇌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광유전자적 기술을 통한 쥐 행동의 부분적 제어는 이미 성공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광유전자적 기술을 이용한 원숭이 실험이 소개되기도 했다. 따라서 인간 뇌의 광유전자적 조작도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앞으로 기억 코드까지 판독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원하는 기억들을 돈을 주고 사서 뇌 안에 직접 입력할 수 있을지 모른다. 멋진 영화배우와의 데이트, 에베레스트 정복,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편안한 일요일 오후 산책처럼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억들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소중한 기억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만들어진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어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할 것이다. "행복한 기억을 돈으로 사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