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한국 외교의 시험대, 야스쿠니 放火 중국인

조선일보
  • 정권현 선임기자
    입력 2012.12.20 00:24

    주한 日대사관 화염병 던져 복역日 '인도조약에 따라 넘겨 달라'
    中 '정치범이니 본국 송환' 요구… 외교 채널 통해 으름장도 놓아…
    정부, 反日 여론 의식 우왕좌왕… 법원의 인도재판 결정 주목돼

    정권현 선임기자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혐의로 범죄인 인도재판을 받고 있는 중국인 류창(劉强·38)의 신병처리 문제가 코앞에 닥쳤다. 지난해 12월 6일 야스쿠니 신사의 문에 불을 지르고 한국으로 도피한 류씨는 지난 1월 8일 다시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지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그는 인도재판을 받기 위해 다시 수감돼 법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형 집행이 끝난 류씨를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중국은 그를 '정치범'으로 인정해 국외 추방 형식으로 송환하라고 거칠게 압박했다. 법무부는 고심 끝에 사법부에 떠넘겼고, 우리 법원은 내년 1월 5일까지 류씨를 일본으로 넘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일본에서 강한 우파 성향의 아베(安培晋三) 정권이 등장해 동북아 3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류씨 처리 문제는 우리 정부로선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류씨를 중국으로 넘기는 결정이 나오면 가뜩이나 틈새가 벌어진 한·일 관계는 결별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부터 3차례 열린 류씨 재판에는 일본 취재진 수십 명이 방청석을 꽉 메워 일본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중국은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7월 방한한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은 권재진 법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요구대로 하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류씨의 변호인 측에 따르면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류씨의 중국 송환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중국 정부가 방화범에 불과한 류씨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고, 중국 송환을 자신하는 배경은 뭘까? 류씨는 법정에서 한국 국적의 외할머니가 1940년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가족력을 밝히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반일(反日) 정치범'이니만큼 중국에서 재판받게 해달라는 주장이다. 지난 11월 류씨에 대한 인도재판이 청구되자 흥분한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이 중국을 배신했다"며 6000건 이상의 한국 비난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류씨는 '항일 열사'로 통한다.

    그동안 한국의 형사사법 집행 과정에 개입해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도 중국이 류씨 송환을 자신하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중국공산당 관련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해 한국으로 도주한 중국공산당 간부를 중국의 압력에 못 이겨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고 중국에 넘겨버렸다. 작년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에게 중국공산당 고위 간부가 직접 면담을 요청해 "잡아서 보내달라"고 특별 요청했고, 검찰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그를 체포했다. 그는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가 드러나 기소됐지만 재판을 받지 않고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는 중국으로 끌려갔다. 그가 중국에서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법 조업을 하다 적발된 중국 선원들이 우리 해경에게 난동을 부리고 살인을 자행해도 처벌은커녕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저자세 외교가 되풀이되다 보니 중국이 한국의 사법제도를 우습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류씨 사건을 둘러싸고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도 정치범으로 인정해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입장과 단순 방화범이니 조약에 따라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정부가 국내 반일 여론을 의식해 우왕좌왕하다가 법원에 책임을 떠넘긴 상황에서 류씨 처리의 결정일은 다가오고 있다. 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새 대통령 당선인이 그 과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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