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정원을 끌어들인 사옥… '제2의 집'이 되다

조선일보
  • 채민기 기자
    입력 2012.12.19 03:02 | 수정 2012.12.20 10:53

    위치·사세 중요시했던 사옥, 작은 회사들이 변화 이끌어
    자연 채광으로 눈 피로 덜고 회전 벽으로 개방·소통 공간… 중정·옥상 정원 6개 두기도
    "건물 돋보이려는 욕심 버리고 환경·행인까지 고려해 지어야"

    YG엔터테인먼트 사옥 내부의‘피벗팅 월’. 벽을 여러 개의 회전문으로 만들었다. /비안디자인 제공
    많은 현대인에게 회사는 '제2의 집'이다. 하지만 회사 건물을 지을 때는 공간의 편리함, 아름다움 같은 가치보다는 위치나 사세(社勢) 과시용 규모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경제성·효율성을 우선시했던 사옥(社屋) 건축이 요즘 변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는 중소 규모 기업의 사옥들이 이런 변화를 앞서 이끌고 있다. 업무의 특성을 설계에 반영한 '맞춤형' 건물에 마당이나 중정(中庭)을 끌어들여 입체적이고 쾌적한 공간을 만드는 게 대체적인 특징이다.

    기업의 특징을 반영한 공간

    우선 회사의 특징을 설계 단계부터 반영한 사옥들이 늘고 있다. 내년 완공 예정인 서울 상암동의 게임 업체 드래곤플라이 사옥(설계 아이아크)은 모니터를 오래 바라봐야 하는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 빛을 조절한 건물이다. 계단·기계실·각종 파이프라인 등의 설비를 건물의 외곽에 배치하고 건물 중심부는 비웠다. 아이아크 유걸 대표는 "외곽의 설비들이 눈을 피로하게 하는 직사광선을 가려 주는 대신, 건물 중심부로 들어오는 간접광으로 자연 채광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방송에 등장해 화제가 됐던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열림과 소통'이 콘셉트다. 실내 디자인을 맡은 비안디자인 안경두 대표는 "연예인, 연습생, 매니저,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작업하기 편하게 했다"고 했다. 대표적인 장치가 회전문처럼 개방할 수 있는 '피벗팅 월'이다. "벽을 10여개의 문으로 만들어서 이걸 열면 복도까지 트인 공간이 된다"고 한다. 건축가 장영철(와이즈건축 소장)씨는 지난달 완공한 서울 역삼동 'ABC 사옥'을 "한국적 풍경을 찾은 건축"이라고 표현했다. "외부 계단에 겹겹이 설치한 검은 벽돌벽을 멀리서 보면 나지막한 산들이 겹쳐 있는 한국적 풍경이 떠올라요. 음향기기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건축주는 회사를 방문하는 외국 관계자들에게 한국적인 미(美)를 어떻게 보여줄지 늘 고민했다고 하는데, 건축주의 바람과 디자인이 맞아떨어진 거죠."

    (왼쪽 위)검은 벽돌을 쌓은 벽면이 겹쳐지는 ABC 사옥, (오른쪽 위)비어 있는 중심부를 통해 간접광이 실내에 퍼지게 한 드래곤플라이 사옥 조감도. (아래)목재와 콘크리트 벽면으로 마감한 휴머니스트 사옥. /사진가 진효숙, 아이아크,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제공
    회사로 들어온 마당과 중정

    마당과 중정은 주택에 주로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사옥에도 적극 활용돼 공간에 숨통을 틔우고 있다.

    올해 3월 완공한 서울 동빙고동 SK행복나눔재단 사옥은 4층 건물의 상부를 칼집 내듯 4개의 매스(덩어리)로 나눴다. 그 결과 3개의 중정과 3개의 옥상 정원이 생겨났다. 설계자 김찬중(더시스템랩 소장)씨는 "직원들이 쉬고 점심도 먹는 휴식 공간으로 중정·정원을 활용하게 했다"며 "건물을 나누고 외부와 접하는 면적을 늘려서 채광·환기에 유리한 쾌적한 공간이 되게 했다"고 했다.

    건물 상층부를 네 부분으로 나눈 SK행복나눔재단 사옥. /사진가 남궁선
    지난 8월 완공한 서울 연남동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설계 김준성 핸드건축 소장)도 건물을 C자 모양으로 만들고 가운데 중정을 뒀다. 건물 바닥 면적이 194㎡(약 58평)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지하 2층까지 깊이 내려간 중정 주변에 카페·강의실·야외공연장 등을 배치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받은 서울 삼청동 블루웍스 출판사 사옥(조남호 솔토건축 대표)도 북악산을 바라볼 수 있는 잔디 마당을 1층에 뒀다.

    "도시의 맥락 잘 살펴야"

    건축가 황두진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 건물을 쾌적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공들여 집을 짓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사옥은 전원주택 등과 달리 도시에 주로 지어지고, 최근에는 업무지구뿐 아니라 주택가 같은 곳에도 들어서는 만큼 주변의 환경을 잘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건축평론가 이주연씨는 "회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욕심이 지나쳐서 도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서 있는 사옥들도 있다"며 "들어설 땅의 특성에 맞춰 건물을 짓는 게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사옥은 기업만을 위한 건물이고 직원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건물을 보고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까지도 고려해 형태를 정하고 공간을 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