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이징 시내 중심가의 한 호텔에서 외신기자 40여명이 참석한 조촐한 송년 파티가 열렸다. 스웨덴 에릭슨에 이어 세계 2위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華爲)가 마련한 자리였다.
화웨이는 이날 파티에 휴대폰 2종과 미디어패드 제품을 들고 나왔다. 와인이나 주스를 손에 든 세계 각국 기자들이 삼삼오오 원탁 위에 올려놓은 제품을 둘러싸고 서서 직접 제품을 조작해보고 의견을 나눴다. 처음 사용해본 화웨이 휴대폰은 디자인이나 외관은 떨어졌지만 터치감은 나쁘지 않았고, 앱 실행 속도는 한국 최신 휴대폰 못지않게 빨랐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인상을 줬다.
화웨이가 휴대폰 생산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한동안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휴대폰을 생산하다가 2010년부터 자체 브랜드를 부착했다. 올해는 레노버·쿨패드 등 다른 중국 업체들과 함께 중국산 휴대폰 제조업체 3강(强)을 형성할 만큼 급성장했다. 지난해 판매량 6000만대 중 60%를 해외에서 팔았을 정도로 해외 판매 비중도 높다.
올 들어 중국에서는 중국 브랜드 휴대폰의 돌풍이 무섭다. 세계적인 조사업체 가트너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레노버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4.8%로 삼성(16.7%) 턱밑까지 올라왔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린 애플은 5위로 미끄러졌다. 중국 언론은 레노버가 내년에 삼성도 제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삼성을 긴장하게 하는 업체는 물량 경쟁에 열심인 레노버가 아니라 기술력이 뛰어난 화웨이이다. 화웨이는 휴대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직접 생산한다. 무선 통신 기능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제품 디자인이나 사용자 환경은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고 일반 소비자를 상대해본 경험이 오래지 않아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는 게 약점이다.
화웨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을 벤치마킹하며 성장해왔다. 성과 위주의 보상 체계와 높은 수준의 임금,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 치열한 내부 경쟁 등이 삼성을 쏙 빼닮았다. 본사가 있는 선전(深�q)에는 삼성의 용인 연수원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형 연수원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화웨이는 언론의 취재 요청에 불응하는 것으로 소문난 기업이다. 그런 화웨이가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베이징으로 마케팅 담당자들을 총출동시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제품 홍보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달에는 문을 닫은 모토롤라 난징연구소의 휴대폰 연구·개발 인력이 대거 화웨이로 자리를 옮겼다. 2년 전에는 BMW의 디자이너가 화웨이의 디자인 총괄로 합류했었다.
삼성과 화웨이는 그동안 주력 분야가 서로 달라 직접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화웨이의 도전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티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화웨이 임원은 삼성을 정면 겨냥했다. "디자인·마케팅은 몰라도 제품 품질은 내년이면 삼성을 따라잡는다." 그의 호언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력 2012.12.17. 23:30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