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골프투어 Q(퀄리파잉)스쿨이 끝난 지 일주일도 더 지났지만 단발머리 프로골퍼 최호성(39)에겐 여전히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아, 소식 들었냐? 고맙다. 가서 잘해봐야지, 뭐." 내년이면 나이 마흔이 되는 이 중견 골퍼는 지난 4일 6라운드로 끝난 Q스쿨에서 31위(11언더파 421타)를 기록해 2013시즌 일본 투어 시드를 따냈다. 출전권을 얻은 한국 골퍼 12명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가난한 형편에 참치 가공공장에서 일하다가 전기톱에 오른손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은 사고,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25세 때부터 독학으로 골프를 익혀 2년 만에 세미프로 테스트 합격….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길을 달려와 '잡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불혹의 나이에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08년과 2011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한 번씩 우승했고 지난해와 올해 상금 랭킹 10위 안에 들었다. 올 시즌 KPGA 투어 13개 대회에 모두 출전해 한 번도 빠짐없이 컷을 통과한 유일한 선수다.
최호성은 "내 골프는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았다"며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나이 마흔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KPGA가 오랜 기간 내홍을 겪으면서 대회 수도, 상금 규모도 크게 줄어들자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가 갈수록 실력이 녹슬기는커녕 오히려 더 발전하는 비결을 묻자 최호성은 "오직 노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 약속도 잡지 않은 채 매일 밤 10시에 잠드는 생활을 수년째 이어 왔다고 한다. "고독한 일상이지만, 남들 먹는 대로 먹고 노는 대로 놀면서 남들보다 더 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골프와의 인연은 1998년 그가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면서 시작됐다. 숙식이 가능하다는 채용 공고만 보고 골프가 뭔지도 모르면서 골프장을 찾아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골프장 직원들도 골프를 알아야 한다'는 지배인의 독려에 처음 골프채를 잡은 것이 14년 전 일이다. 오전 4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하는 틈틈이 레슨도 받지 않고 혼자 훈련해 투박한 스윙으로 프로 골퍼가 됐다.
남들보다 한 마디가 짧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프로 대회를 뛰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타구의 방향과 악력을 조절하기 쉽지 않았다. 복부의 피부를 이식해놓은 수술 부위는 날씨가 조금만 궂어도 쉽게 굳었다. 경기 중엔 주머니 속에 늘 손난로를 휴대해야 했다. 2004년 정규 투어에 데뷔해 우승 없이 4시즌을 보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최호성은 "노력하면 반드시 대가를 거둔다는 진리를 골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호성을 지키는 또 다른 힘은 가족이다. 2005년 결혼 이후 2007년부터 장인 황용훈(59)씨가 그의 전담 캐디로 나섰다. 이듬해 최호성은 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코스에서 최호성은 장인을 '아버지'라 부르며 모든 것을 상의한다. 그는 "내년에 일본에 가서도 초반엔 분위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며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장인어른께 골프 백을 메달라고 정식으로 부탁드려 볼 계획"이라고 했다.
최호성은 일단 내년 시즌 일본 투어에서 상금 랭킹 70위 안에 진입해 2014년 시드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올 시즌 일본 투어 상금 랭킹 1·2위에 오른 선수가 모두 40대 중반의 중견 골퍼"라며 "나 역시 우승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최호성은 "얼마 전 최경주 선배의 자서전을 사서 읽었는데 힘겨웠던 내 어린 시절과 겹쳐지더라"며 "최경주 선배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멋진 골퍼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