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혹은 야하게… 화장실 앞 '그 남자 그 여자'가 변했다

    입력 : 2012.12.15 03:02 | 수정 : 2012.12.16 17:59

    [화장실 표식의 진화]
    요즘 화장실 문엔… - 파란 남자·빨간 여자 벗어나
    요철·그림·인형으로 형상화, 위트있고 과감한 도상 많아져
    왜 바뀌나 - 용변 보고 감추고 싶은 곳 아닌 색다른 문화 공간으로 인식
    性 드러낼 수 있는 여유 생긴 것

    한남동 식당 ‘비채나’(위 사진)와 청담동 카페 ‘콩부인’의 화장실 픽토그램. 왼쪽이 여자, 오른쪽은 남자.
    최근 서울 이태원의 스페인 식당 '봉고'를 찾은 이현진(여·30)씨. 식사 전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화장실 문에 웬 여성이 좌변기에 앉아 볼일 보는 그림자가 비쳤기 때문. 순간 걸음을 멈추고 바로 옆 남자화장실 문을 보니, 거기엔 한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헉, 하고 놀랐다가 다시 찬찬히 봤더니 사람이 아니라 볼일 보는 사람을 그린 그림자였어요. 남녀 화장실을 그림자로 구분한 센스 만점 인테리어이긴 한데, 진짜 사람이 안에 있는 것 같아서 들어가기는 꺼려지더라고요."

    화장실 픽토그램이 달라졌다

    화장실의 표찰, 픽토그램(사물이나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그림문자)이 경쾌해졌다. 요즘 청담동이나 한남동의 카페·식당 화장실에선 한층 야해지고 적나라해진 개성 만점의 화장실 픽토그램을 만날 수 있다. 남자화장실 문 앞에 앙증맞은 고추 그림을 그려넣고(한남동 한식당 '비채나'), '남자=凸, 여자=凹'처럼 튀어나오고 들어간 요철 문양(청담동 '콩부인')을 넣기도 한다.

    압구정동의 카페 '무이무이' 남자 화장실 입구는 '스티브'가 지키고 있다. 유리장 속에 놓인 남자 피겨상. 여자 화장실 입구엔 '앨린'이 서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써레인'의 남녀 화장실 문에는 망토를 두른 소년·소녀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큼직하게 그려넣었다.

    위상도 업그레이드

    화장실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이젠 상당수 사람이 화장실을 통해서 업소를 평가하기 때문에 음식의 맛, 가격, 인테리어뿐 아니라 마무리까지 신경 쓰고 특색 있게 꾸미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씨는 "화장실이 그저 용변 보는 곳, 감추고 싶은 문화가 아니라 색다른 공간으로 부각되면서 업소들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화장실 내부 바닥과 문을 뉴욕 전경으로 꾸미거나 투명한 화장실 문이 잠기는 순간 불투명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태원에 있는 스페인 식당‘봉고’의 화장실 문. 여자화장실(왼쪽)엔 좌변기에 앉은 여자, 남자화장실엔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그림자’처럼 그려 넣은 후 유리를 덧씌웠다. 오른쪽 사진은 망토를 두른 소년·소녀가 손 잡고 있는 그림을 화장실 문에 그려넣은 가로수길‘써레인’. /이태경 기자
    위상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위치도 바뀌는 추세. 최씨는 "요즘엔 화장실을 건물의 귀퉁이나 엘리베이터 뒤가 아니라 전망이 좋은 곳에 '내놓는' 식으로 설계한다"고 했다.

    화장실에 과감한 '성적 뉘앙스'

    좀 더 의미 있는 변화는 화장실 표식에 과감히 '성적(性的) 뉘앙스'가 들어왔다는 점. 용변을 보는 곳을 부르는 단어는 '뒷간→변소→화장실'로 변해왔다. 변소와 화장실을 가르는 '통념'은 수세변기의 유무 여부. 변소가 점점 발전하면서 '화장실' 표식도 '파란 양복 입은 남자' '빨간 치마 입은 여자'를 간접적 상징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 표식에 'GENTLEMEN' 'LADIES', '신사용' '숙녀용' 같은 단어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 방식. '변소'라면 '남자용·여자용'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있지만, 변소보다 한 차원 고급화한 단어인 '화장실'에는 '신사용·숙녀용'이란 단어가 어울린다는 일종의 언어적 강박의 산물이었다. 1970, 80년대 백화점, 터미널, 레스토랑 등 공공건물 건축이 한 단계 진화하면서 이런 구분은 '화장실 표식의 법칙'이 됐다.

    그러던 화장실 표식에 과감히 요철 같은 성적인 함의가 들어온 것. 대부분의 이용자는 성적 뉘앙스를 가진 화장실 표식을 유머로 받아들인다. '남녀 차별'이 아니라 '남녀 차이'를 용인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화평론가들은 "획일적·도식적이던 화장실 픽토그램에 낯뜨겁고 적나라한 도상을 과감히 그려넣기 시작했다는 건 우리도 이제 '성(性)'을 위트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여유가 생겼다는 방증"이라고 말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원씨는 "이제 웬만한 건물 화장실에는 파우더룸이 있는 것처럼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었던 화장실이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현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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