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TALK] 진정한 패션 고수는 브랜드를 감춘다

조선일보
  • 채민기 기자
    입력 2012.12.14 03:05

    "그런 브랜드가 있었어?"

    옷이나 액세서리를 칭찬하며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묻는 질문에 대답했을 때 상대로부터 이런 반응이 나온다면, '감각 있다'는 칭찬까지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패션·스타일계에서 최근 '비밀'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남들은 잘 모르는 브랜드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 스타일 리더로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시크릿(비밀) 브랜드'에서는 로고를 없애서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모르게 만든 아이템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 서정은씨는 얼마 전 자신이 담당하는 유명 방송인 A씨에게 스웨덴 H브랜드의 패딩 점퍼를 추천했다. 멋쟁이들 사이에서는 소문을 탔지만 '대세'로 통하는 패딩 점퍼들에 비하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패딩 점퍼들은 어깨나 가슴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로고를 붙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품을 권했다"며 "대세로 통하는 수백만원대 제품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고 디자인도 '점잖다'며 A씨도 좋아했다"고 했다.

    국내 패션디자이너 B씨는 최근 한 시상식장에 세련된 패딩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행사가 끝난 뒤 몇몇 패션계 인사들은 그 재킷이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를 놓고 갖가지 추측을 내놨다. 로고가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가(高價) 명품 브랜드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B씨는 "한 SPA(기획부터 유통까지 모두 맡는 의류 회사) 브랜드가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해서 선보인 라인의 제품"이라고 했다.

    S백화점은 지난 9월 해외 기능성 화장품들로 구성된 편집 매장을 열었다. 국내에 별도의 매장을 열지 않고 일부 스파 등에서만 소규모로 유통되던 제품들을 들여왔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고급 스파, 에스테틱 등을 이용한 경험이 많은 소수 VIP 고객들이 꾸준히 찾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한 침구 브랜드는 최근 국내 한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자사(自社) 브랜드로 꾸미고 VIP 고객들을 초청해 1대1 맞춤 주문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정은씨는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를 찾고, 그걸 굳이 내보이지 않는 것이 '쿨(cool)함'의 한 징표가 되고 있는 것"이라며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유명 브랜드 제품을 찾지만 너도나도 입는 통에 오히려 몰개성해지는 일이 벌어지다 보니 나타나는 역(逆)발상의 결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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